
그는 스스로를 ‘탐사 전문 기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식 고문’이라고 부른다. 그는 지난 8월 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격으로 다친 아이들이 미국에 입국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이 아이들이 비자를 받은 방법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미 국무부는 “검토를 진행하는 동안 가자지구 출신들에 대한 방문비자 발급을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이 받은 비자는 정착 비자도 아니고 치료만 받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의료-인도주의 비자’였다. 2주 동안 이 비자를 발급받은 아이는 겨우 열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국무부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절차를 중단시켰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여러 의회 관계자들 질의에 따라”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자를 받은 가자지구 아이들은 몇 명 안 되지만 어른이 동반했다고 설명했다. 의회 일각에서 비자를 받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국무장관은 “그 조직이 비자 취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재평가하겠다”고 했다.
발단이 된 인물, 영상을 올리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1993년생 극우 운동가 로라 루머다. 음모론 퍼뜨리기 달인에다, ‘친백인 민족주의자’, ‘자랑스러운 이슬람혐오론자’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기성 언론을 못 믿겠다며 또 다른 극우파가 2010년 창립한 ‘프로젝트 베리타스’를 비롯해 ‘겔러 리포트’, ‘리벨 뉴스’, ‘인포워스’ 같은 매체들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온갖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인플루언서가 되더니 이제는 우익들의 영상 플랫폼으로 유명한 럼블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루머 언리시드(Loomer Unleashed)’라는 쇼를 진행하고 있다.
입 밖에 내놓는 말들에는 증오 선동과 거짓 정보가 넘쳐나지만, 트럼프 정부 재집권 뒤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2020년과 2022년 플로리다에서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졌으나, 정치적 파워는 오히려 최근 더 커졌다. 가자지구 출신들 비자 발급을 중단시킨 건 국무부마저 움직이는 루머의 힘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일 뿐이다. 올 4월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 분야 관리들을 해고한 것에도 루머 영향이 컸다고 보도했다. 루머가 일부 관리들이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자마자 트럼프가 줄줄이 관리들을 잘라냈다는 것이다. 잡지 ‘애틀랜틱’은 냉전 시절 미국을 ‘빨갱이 사냥’으로 몰아넣은 조지프 매카시에 빗대 루머를 ‘트럼프 시대의 매카시’라고 불렀다.

일본엔 ‘혐한 담론’ 온상인 니시무라
트럼프 1기 정부 때도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 우익 선전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와 팟캐스트 ‘워룸’을 발판 삼아 영향력을 키운 뒤 무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수석 전략가이자 선임고문을 지낸 스티브 배넌 같은 사람 말이다. 1기 시절 보수층을 이른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2기 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 된 마이클 앤턴도 비슷한 인물이다. 일론 머스크는 성공한 기업가지만 역시 비슷한 경로를 따랐고, 아예 소셜미디어 X를 인수해버렸다. 트럼프 2기 때 장관이 되더니 얼마 못 가 쫓겨났지만, 화제성은 여전하다. 머스크는 미국 정치뿐 아니라 유럽 정치에도 관여한다. 유럽 극우파들을 만나 응원을 하더니 독일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 대표와의 대담을 X로 생중계해 논란을 키웠고, 유럽연합(EU)이 X가 허위정보를 퍼뜨린다며 반복해서 경고를 보낼 지경이 됐다.
우익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역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면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테일러 스위프트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억8000만명인 스위프트가 2023년 유권자 등록일에 등록을 독려하자, 신규등록자가 3만5000명이 넘었다. 대중문화 스타가 정치적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행동을 바꾼 사례다.
사실상 자민당 일당 장기집권 체제인 일본에도 인플루언서가 있다.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인 ‘2찬네루(2channel)’ 창립자이고, 비슷한 사이트들을 인수한 니시무라 히로유키(西村博之)가 대표적이다. 니코니코라는 영상 플랫폼 설립에도 관여해 이른바 ‘니코 댓글’이라고 불리는 댓글 문화를 대중화시켰다. 그가 운영한 2채널과 4채널(4chan)은 익명성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극단적인 논조와 혐오 표현이 확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우익·반페미·혐한 담론’의 온상인 것이다. 대표적인 우익정치인이었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에게 항의 e메일을 보내자고 주장한 여성 시의원에게 속된 말로 ‘좌표’를 찍어서 사이버 공격을 선동하는 등 비방과 중상을 담은 글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15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 극우 정당 참정당은 2019년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와 우파 유튜버 카즈야 등이 ‘내 손으로 만드는 정당(정당 DIY)’을 기치로 창당했다. 가미야는 방송 패널로 활약하고 유튜브와 X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트럼프를 본뜬 ‘일본 우선주의(재패니즈 퍼스트)’ 메시지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코로나19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고, 미군기지의 환경파괴를 비판하는 오키나와 헤노코 연좌시위를 비하하고, 국제 금융자본을 비판한다며 느닷없이 반유대주의를 설파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인플루언서 권력을 발판으로 이제는 일본 정계의 주요 인사가 됐다.
독일의 레조(Rezo)는 유튜브와 트위치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 주로 음악 영상을 올리던 사람이었다.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2012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유명 팝 음악 커버 연주를 올려 인기를 끌었다. 2018년에는 구독자가 100만명을 돌파해 유튜브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다. 그러던 그가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자기가 운영하는 두 번째 채널에 ‘기민당의 파괴’라는 54분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유럽 최고의 인플루언서는 툰베리
앙겔라 메르켈 총리 때 독일은 양대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이 손잡고 공동 정권을 운영했다. 레조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 금권정치와 인터넷 검열을 겨냥했다. 당시 극우 선동과 가짜뉴스가 늘자 독일 정부와 여당은 정치 여론을 규제하려 하고 있었다. 레조는 극우정당 AfD 역시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지만, 열흘 새 1300만명이 본 그의 영상은 결국 중도우파 기민당과 중도좌파 사민당 모두의 몰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레조는 2020년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위해 소셜미디어 통계분석을 제공해주는 회사를 차렸지만, 최근에는 스트리밍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 최고의 인플루언서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다. 어릴 적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미래세대의 목소리’로 주목받았던 그는 2023년 독일 뤼체라트 석탄광산 반대 시위, 2024년 네덜란드 헤이그 도로봉쇄 시위에서 앞장서면서 각국에서 기후정책 논쟁이 벌어지는 증폭기 역할을 했다.
아폴로 퀴볼로이는 ‘필리핀의 전광훈’ 같은 인물이다. 공식적인 직업은 목사였지만 기도보다는 방송 채널을 만들어 극우 선동을 하는 데 더 힘을 기울였다. 지금은 국제형사재판소(ICC) 처벌을 기다리는 반인도범죄 혐의자 처지가 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한때는 두테르테의 ‘영적인 조언자’로도 불렸다. 두테르테가 다바오 지역 정치인이던 시절 그의 채널에 나와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한 적도 있다.
두테르테를 믿고 여러 범죄를 저질렀는데, 아동 성매매 때문에 미국서도 문제가 됐다. 두테르테가 퇴임한 뒤 2022년 대선에서 옛 독재자의 아들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가 두테르테 딸 사라와 손잡고 정-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집권 3년 차가 된 지난해 9월 필리핀 당국은 퀴볼로이를 전격 체포했다. 봉봉의 ‘두테르테 쳐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봉봉과 사라 진영은 서로 등을 돌렸고, “하나님이 선택한 아들”, “우주의 소유자”를 자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왕국’을 선언한 퀴볼로이는 감옥에 갇혀 있다.
러시아에서도 선전 선동은 중요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영향을 주고 관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권 밖 인사들의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뒤 크렘린이 나서서 친정부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들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사례는 많이 보고됐다. 이를테면 국가 포상까지 받은 미하일 즈빈추크는 라이바(Rybar)라는 필명으로 군사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전황 브리핑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개인보다는 ‘Z 채널’이라 불리는 집합적인 인플루언서 생태계가 러시아의 여론 조작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전문가, 기자, 군인 등을 자처하는 블로거들이 전쟁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공식 발표를 오히려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정치적 발언이 제한된 중국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후시진(胡锡进)이다.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 편집장 출신으로, 현직에 있을 때부터 웨이보에서 국가안보나 외교 문제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다. 민족주의를 바탕에 깐 강성 발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중국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기 힘든 외부에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가늠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웨이보에서 토끼주석(兔主席)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친정부 논객 런이(任意)는 여러 정책이나 외교·안보 이슈에서 강성 내러티브를 대중화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기성 언론은 못 믿겠다며 소셜미디어를 발판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력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심지어 높은 자리를 꿰차는 인플루언서들. 이제 그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나라, 그들을 무시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시민의 목소리가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들이 대변하는 것은 과연 약자들일까.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