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지연(30)씨는 대중교통으로 20분 남짓 걸리는 출근길에 드라마 시리즈 전편을 훑는다. 약 60분짜리 한 회차에서 하이라이트 부분만 뽑아 1분 내외 영상으로 요약한 ‘숏폼(짧은 동영상)’을 여러 개 몰아보기하는 식이다. 일명 ‘숏드’로 불리는 이 콘텐트를 여러 개 보다 보면 전체 줄거리 흐름을 꿰뚫을 수 있다. 박씨는 “유행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려니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며 “16부작 드라마를 1시간으로 압축해놓은 영상도 1.5배속으로 빨리 돌려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요약본도 이해가 잘 되게 구성해 인기를 끄는 네임드(인터넷에서 유명한) 유튜브 채널을 지인과 공유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자주 찾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주인이 소개하는 물건을 사는 ‘숏핑(숏+쇼핑)’을 즐긴다. 틱톡·유튜브 등 숏폼 영상 하단에 쇼핑몰 링크로 연결되는 탭을 클릭해 한 번에 구매까지 하는 방식이다. TV 홈쇼핑 등과 달리 복잡한 설명이 없고 핵심 정보만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는 “평소에 검색했던 생활용품이 알고리즘을 타고 SNS에 떠서 구매한 적도 많다”며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구매까지 1분도 안 걸린다”고 했다.
1분 이내 짧은 동영상으로 구성된 각종 숏폼이 MZ 세대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숏OO’식 라이프 스타일로 확장하고 있다. 숏툰(숏+웹툰)·숏드(숏+드라마)·숏송(숏+노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다가 연결된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거나, 90분짜리 영화나 16부작 드라마를 압축한 요약 영상을 보는 식이다. 100화가 넘는 장편 웹툰 역시 1분 안에 그림과 줄거리를 요약한 숏툰으로 본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를 조사한 결과,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은 46시간 29분으로, 넷플릭스·웨이브·티빙·디즈니+·왓챠·쿠팡플레이 등 OTT 플랫폼의 월평균 사용 시간(9시간 14분)보다 5배로 길었다. 공무원 김선웅(33)씨는 “한동안 일주일을 TV 콘텐트를 기다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젠 한 회를 쭉 보는 게 어렵다”며 “노래를 듣거나 웹툰을 보는 것도 취미인데 기다리는 게 스트레스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짧게 요약하는 숏폼은 모든 SNS에서 대세가 됐다. 유튜브에선 지무비(358만 명), 고몽(245만 명), 김시선(194만 명) 등 영화·드라마 요약 채널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부상했다. 특정 노래 속도를 1.3~1.5배 빨리 재생하거나 클라이맥스 부분만 편집한 ‘숏송’ 콘텐트도 ‘스페드 업(Sped Up)’이란 이름으로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K-팝에 맞춰 춤을 따라 추는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노래 후렴구와 포인트 안무를 1분 내외 영상에 담기 위해 숏송이 자주 쓰이면서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가 2013년에 발매한 노래 ‘첫 눈’이 지난해 발매 10년 만에 역주행해 일간 차트 1위에 오른 것도 스페드 업 댄스 챌린지 덕분이었다.
숏폼에서 쇼핑몰 링크를 타고 바로 연결되는 숏핑 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틱톡에선 ‘#Tiktokmademebuyit(틱톡 보고 삼)’ 해시태그가 달린 영상 조회 수가 30억회 이상을 기록하고, 실제 사용 인증글도 다수 공유된다. 자동으로 바늘 끝에 실을 넣어주는 제품같이 눈길을 끄는 제품의 영상 끝에 ‘구매처는 본문에’라는 문구를 넣어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6년 470만 달러(약 65억 1279만원) 규모였던 틱톡 기반 글로벌 소비 시장은 매년 확대돼 지난해 38억4000만 달러(약 5조 3211억원)로 800배 넘게 성장했다.
이런 현상은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만족감이 좋음)’를 추구하는 MZ 세대와 시장이 결합한 결과다. 이모(33)씨는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습득할 수 있어 5분 내외 짧은 콘텐트를 자주 틀어 놓는다”며 “바쁜 일과 중에 샤워 시간, 식사 시간 등을 짬내서 문화 생활을 즐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짧은 영상에만 매몰돼 도파민 중독, 과소비 같은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짧은 영상이 넘어가기 전에 빨리 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충동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소비자 스스로 신중한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젊은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 할 정도로 온라인 세상에서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지만, 순간의 도파민에 익숙해져 장시간 집중력은 되레 떨어졌다”며 “자극적인 콘텐트만 계속 찾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기업들이 과도한 중독을 초래할 알고리즘 추천을 지양하는 등 기술적 조치를 마련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