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다음 단계로 ‘피지컬(물리적) AI’가 주목받으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생태계를 선점한 곳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이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는 거대 기업 중심으로 우위를 점했다면, 중국은 탄탄한 공급망을 기반으로 규모와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미·중이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한때 ‘로봇 강국’으로 불리던 한국의 경쟁력은 어느새 뒤처졌다. 전통적인 로봇 강국 일본도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격차가 선명하다. 이에 한국 대기업들은 로봇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최근 추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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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시모 추격한 한국 휴보, 지금은…
인간처럼 걷고 말하고 물건을 잡아 옮기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 바람이 거세다. 지난 2년간 AI 분야가 각광받은 것처럼 향후 몇 년간 전 세계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열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산업용 로봇은 고강도의 단순 작업을 시작으로 제조 현장 곳곳에 이미 활용되고 있지만 AI가 융통성을 불어넣은 인간형 로봇의 파급력은 예측하기 어렵다. 자율성과 지능을 겸비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본격 투입되면 산업 현장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평가다.
미국은 테슬라 등 빅테크를 필두로 로봇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폰 생태계처럼 외형부터 소프트웨어(SW), 운영체제(OS)까지 구축해 주도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중국은 부품 생산, 시제품 설계 등 로봇 공급망 관련 기업이 수만 개 규모다. 두터운 공급망과 제조역량, 중국 정부의 전 방위적 정책 지원을 통해 역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2004년 말 영국에서 선보인 2족 보행 로봇 ‘휴보’는 당시 지능형 로봇 최강국 일본의 ‘아시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진화한 휴보는 10년 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관하는 재난 로봇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인호 부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조차 로봇을 활용한 물리적 대응에 실패하면서 로봇 기술과 시스템의 효용성에 의문이 나왔다. 2013년과 2015년에 진행된 DARPA는 로봇 기술 발전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한동안 휴머노이드의 효용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기대가 컸으나 기존 기술들이 실용화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났다”며 “대회 이후 주요 연구 자금이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로 유입되지 않았는데, 최근 후속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기업들이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면서 침체기를 겪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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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산업용·협동로봇’ 한국은 ‘AI’ 강점
현재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주춤한 모습이다. 강희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초기 투자 의사를 밝힌 주요 대기업들이 로봇 사업의 로드맵을 구체화하지 않았고, 첨단 로보틱스와 AI 기술의 집약체로 여겨지는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국내 기업이 부각되지 못한 탓”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일본은 여전히 산업용 및 협동 로봇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생산력은 중국이 위협적인 1위지만 품질면에선 아직 한계가 있다. 다만 과거 일본이 선도하던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진 지 오래다.
중국 인민망연구원이 2023년 말 발표한 기술 특허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특허 출원 건수는 누적 6058건으로 1위 중국(6618건)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특허청이 세계 주요국 특허청에 출원된 AI 기술 적용 로봇 관련 특허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일본(235건)은 중국(3313건), 한국(1367건), 미국(446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또 다른 축인 AI 분야에서 일본보다는 조금 더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AI와 로봇 혁신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 김선우 성균관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재생에너지 분야의 파괴적 혁신으로 인해 거의 모든 산업의 게임의 룰이 다시 쓰여지고 있다”면서도 “‘골든타임’은 아직 지나지 않았으나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휴머노이드 선봉에 선 기업들의 전략
올해 CES에서는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 소프트웨어부터 중국 로봇 회사들의 휴머노이드 신기술까지 각축전이 벌어졌다.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다지 빠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로봇 기술력 확보를 위해 투자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서 한국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로봇 전문 기업을 인수하거나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출 초읽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휴보 연구진이 설립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지난해 말 인수했다. 휴보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준호 교수가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에 합류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30년까지 반도체 사업장의 무인 공정 구현을 위한 로봇 연구개발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LG전자는 지난달 말 상업용 자율주행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 지분 30%를 추가로 취득해 총 지분 51%로 경영권을 확보했다. 베어로보틱스는 로봇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해 다수 로봇을 최적화한 경로로 움직이는 군집제어와 클라우드 관제 솔루션 등 분야에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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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상용화 시점을 살피고 있다. 아틀라스는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COSMOS)’ 개발과 연관된 한국 유일의 휴머노이드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첨단 로봇의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업력 34년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벤처 기업으로 시작해 2021년 현대차에 인수됐다. 삼성·LG의 두 로봇기업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네이버도 AI 로봇을 이루는 거대언어모델(LLM)부터 클라우드, 로봇 운영체제(OS) 등 다양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네이버는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휴머노이드 100대 기업’에 포함됐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7개 한국 기업과 함께 잠재력이 조명됐다. 네이버는 자율 주행 서비스 로봇 ‘루키’, 양팔 로봇 ‘앰비덱스’, 디지털 트윈 제작에 사용되는 로봇 ‘M2’ 등 다양한 형태의 로봇 개발·제작에 나섰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에는 일본의 전자 대기업 소니와 자동차 기업 혼다, 도요타, 로봇 기업 아시모가 이름을 올렸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시장 과열을 우려해 유보적인 평가도 나온다. 기대에 비해 기술력 진전이나 상용화가 늦어질 수 있어서다.
정부는 생태계 마련을 위한 지원에 시동을 걸었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얼라이언스(가칭)’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로봇 완제품을 제조하는 대기업과 로봇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I 모델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등이 참여 대상이다. 로봇 얼라이언스의 주된 목적은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업들이 한데 모여 효율적으로 제품을 상용화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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