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대차/ 기아 EV3 vs BYD 아토3

‘가성비’ 소형 전기 SUV 대결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중국집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해 본 고민일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일일이 시승해보고 결정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한자리에서 경쟁 차량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앙일보는 온라인 자동차 전문매체 로드테스트(roadtestmedia.com)와 함께 '도전, 차대차(車vs車)' 시리즈를 준비했다. 숫자로 나오는 스펙이나 극한 상황의 시승기뿐 아니라 실제 운전 과정에서 느끼는 장·단점과 가성비, 편의성까지 꼼꼼하게 비교한다. 첫 시험대에는 기아 EV3와 BYD 아토3가 올라왔다. 가족용으로 처음 접하기 좋은 가성비 높은 소형 SUV다. 차급과 장르는 물론 최고출력과 서스펜션 형식, 굴림 방식마저 같다. 가격은 둘 다 3000만원대에서 시작하지만 아토3가 845만~1656만원 저렴하다. EV3가 이런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kr, 김창우 중앙일보 경제선임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사진=서동현 로드테스트 기자
독일맛 EV3와 이탈리아향 아토3
기아 EV3는 레바논 출신으로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카림 하비브 디자인 센터장의 손길이 닿았다. 호랑이 코 모양의 기아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현재 기아의 테마인 '상반된 요소의 조화(Opposite United)'에 충실하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출신답게 간결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언뜻 미니멀해 보이지만, 치밀한 반전을 숨겼다. 동그란 휠 속의 직사각형 무늬나 평면을 가장한 곡면 등이 좋은 예다. 고차원적 디자인인데, 조형미는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BYD의 볼프강 예거 수석 디자이너는 독일 출신이지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부하고 알파로메오, 람보르기니 등의 디자인을 지휘하다 2016년 중국의 BYD로 옮겼다. 이탈리아 냄새가 나는 아토3의 디자인은 EV3와 대조적이다. 유기적인 선과 면으로 차체를 빚었다. 조화와 비례, 정확성과 적합성처럼 오랫동안 검증을 거친 보편적 요소의 조합이다. 그래서 낯선 엠블럼을 빼면 취향을 타지 않는다. ‘용의 얼굴’ 테마는 다분히 중국풍이지만 지나치진 않다. 다만, 튀어나온 도어 핸들과 저렴해 보이는 휠, 커버를 씌우지 않고 속을 드러낸 보닛은 옥에 티다.

EV3의 밑바탕은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인 ‘e-GMP’다. 그런데 출시 이후 "기존 e-GMP와 달리 니로 EV의 내연기관 공용 플랫폼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터-감속기 일체형이 아니고, 400V 시스템이란 점이 근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e-GMP의 정의를 확장한 개념"이라고 해명했다. 처음부터 SUV뿐 아니라 세단·미니밴·픽업까지 아우르는 확장 가능한 플랫폼으로 내놨으면 피할 수 있던 논란이다. 반면 BYD는 400V 전기차 아키텍처 'e-플랫폼 3.0'을 기반으로 아토3를 내놨다. 핵심은 초박화(超薄化)와 집적화(集積化). 모터 컨트롤러와 감속기, 온보드 충전기, 컨버터,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전력 배분 장치(PDU), 열관리시스템(TMS) 등을 하나로 묶었다. 그 결과 효율과 수명을 늘리고, 무게와 부피는 줄였다. 제조 공정을 단순화해 원가도 낮췄다. BYD는 지난 3월에 최대 1000㎾의 충전 속도를 지원하는 1000V 아키텍처 ‘슈퍼 e-플랫폼’도 공개했다. 5분 충전으로 400㎞를 달릴 수 있다.
EV3와 아토3는 국내에서 가장 낮은 가격에 접할 수 있는 실질적인 5도어 차량이다. 기아 레이 EV나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처럼 더 싼 전기차도 있지만 경차 기반으로 뒷좌석을 온전히 활용하기 쉽지 않다. EV3는 3995만~4895만원, 아토3는 3150만~3330만원이다. 아토3가 845만~1656만원 낮다. 비율로는 격차가 21~32%에 달한다. 가격이 3000만원대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차이가 작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유럽 차급체계에 따르면 EV3는 B세그먼트(소형차), 아토3는 C세그먼트(준중형차)다. 아토3가 길이는 15㎝, 너비와 높이, 휠베이스는 2.5~5.5㎝ 크다. 그런데도 체감 실내공간이나 트렁크 용량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현기차의 공간 뽑기 능력은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차체 크기
EV3 실내가 덩치 큰 아토3보다 오히려 넉넉
EV3의 실내 디자인은 겉모습 테마를 오롯이 계승했다. 반듯하고 심플하다. 다만, 과한 디자인이 실용성을 해치는 부분은 아쉽다. 너무 아래로 밀려나 바람 방향에 제약 많은 송풍구가 대표적이고, 도마 같은 센터 트레이도 쓸모가 마땅치 않다. 실내 공간은 좀 더 우람한 덩치의 아토3보다 오히려 넓다. 좌우 모서리 끝까지 알차게 활용한 결과다. 앞좌석 크기는 다소 빠듯한 편이지만 뒷좌석 무릎과 어깨 공간은 여유만만이다. 하지만 높은 벨트라인과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운 B필러 때문에 시각적으로 답답하다. 대신 등받이를 6대4로 나눠 뒤로 눕힐 수 있다. 실내 소재는 플라스틱 느낌이 너무 짙다.

매끈한 외모와 달리 아토3의 실내는 파격적이다. 테마는 ‘피트니스’와 ‘음악’. 실내 도어 손잡이와 앞좌석 사이 팔걸이는 러닝머신의 워킹 레일, 송풍구는 덤벨, 실내 도어 손잡이는 악력기, 도어 포켓 고무줄은 기타 줄을 연상시킨다. 대시보드는 만두피 여미듯 눌러 접었고, 여백엔 옅은 주름을 새겼다. 위트 넘치고 발랄하다. 앞뒤 좌석은 EV3보다 넉넉하고 착좌감도 좀 더 푹신하다. 다만 앞 도어 팔걸이가 바깥쪽 무릎과 종종 맞닿아 불편했다. 유리 지붕 덕에 공간감은 아토3의 승리다. 뒷좌석 개방감이 더 뛰어나다.

EV3는 12.3인치 디스플레이 두 개가 나란히 어깨동무했다. 시승차는 어스 롱레인지. 헤드업 디스플레이 옵션도 더했다. 59만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 운전 중 정보창을 곁눈질할 필요가 거의 없다. 중앙 터치스크린 밑엔 터치 버튼을 배치했다. 실제 써보니 장단점이 있다. 주요 기능을 따로 뺀 점은 반갑다. 하지만 화면 조작 중 무심코 건드리기 쉬웠다.

아토3는 운전대 너머 5인치 LCD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중앙의 터치 디스플레이는 12.8인치로 큼직하다. 세로 화면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EV3와 달리 공조장치 조절 기능까지 스크린에 넣었지만 쓰기 어렵지는 않다. 가격 차이만큼 장비의 종류와 기능은 EV3가 앞선다. 음성인식은 인공지능(AI) 접목한 EV3가 인식률과 활용성에서 낫고, 빌트인캠2,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컨트롤과 디스플레이 테마 등은 EV3만 갖췄다.

주행감은 상반… 발랄한 아토3, 진중한 EV3
EV3와 아토3 모두 ‘영구자석 동기모터(PMSM)’로 앞바퀴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둘 다 150㎾로, 약 204마력(PS)에 해당한다. EV3는 니켈·카드뮴·망간(NCM)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 카라왕에 세운 합작법인 그린파워가 만든다. 용량과 항속거리, 배터리를 10%에서 80%로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본형 (58.3㎾h/350㎞)이 29분, 롱레인지(81.4㎾h/501㎞)가 31분이다. 아토3는 에너지 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쓰지만 모터와 컨버터, 감속기 등 8가지를 하나로 통합한 ‘8-in-1’ 파워트레인을 얹었다. LFP 배터리는 삼원계 리튬이온보다 과방전 및 과충전 때도 화재나 폭발 위험이 적다. 수명도 길고 내구성도 뛰어나다. 제조 원가도 낮다. BYD는 LFP 배터리를 칼날처럼 얇고 기다란 ‘블레이드(Blade)’ 형태로 차체에 통합해 최대한 많이 얹는 방식으로 단점을 상쇄했다.

아토3는 움직임이 사뿐사뿐하다. 딱히 섬세하게 조작하지 않아도, 부드럽게 가속한다. 주행 모드는 에코와 노멀, 스포츠의 세 가지. 차이는 크지 않다. 회생 제동은 밋밋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전기차 특유의 위화감이 적다. 물리 제동도 직관적이지 않다. 페달 조작 초기에 순간적으로 응답이 없다가 갑자기 제동력이 샘솟는다. 속도를 높이면 공차중량 1750㎏의 차체를 경쾌하게 튕겨 낸다. BYD가 밝힌 아토3의 제로백(0→시속 100㎞ 가속 시간)은 7.3초. EV3보다 0.2초 더 빠른데, 부드러운 섀시 세팅 때문에 기대 이상 드라마틱하다. 비판적 관점으로 해석하면 파워가 섀시를 성큼 압도한다.

한편,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차만 바꿔 타면 단독 시승 때 느끼지 못한 EV3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아토3가 가볍고 발랄하다면, EV3는 진중하고 비장하다. 묵직한 주행 감각 때문에 피부로 와 닿는 가속감은 아토3보다 아쉽다. 하지만 가속 이외에 감속과 코너링, 재가속 등을 종합한 주행 성능은 오히려 EV3가 유리하다. 강력한 회생 및 든든한 물리 제동 덕분에 더 자신감 있게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모드도 훨씬 적극적이다. 정속 주행 중 모드만 바꿔도 속도가 팍 치솟을 정도다.
동력 성능
번갈아 몰아보니 둘의 차이가 한층 명료하다. 아토3는 누구나 쉽고 부담없이 다룰 수 있다. 출퇴근과 자녀 등하교 등 도심 주행패턴과 잘 어울린다. 특히 고르지 않은 노면에서 충격을 삼키는 재주가 뛰어나다. 아토3에서 EV3로 바꿔 타면, 뻑뻑한 조작감이 새삼 낯설다. 아토3와 대조적으로, 섀시가 파워를 여유 있게 압도한다. 노련한 세팅도 돋보인다. 피칭과 롤링, 요잉 등 불필요한 움직임을 억제했다. 그 결과 시종일관 듬직하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다스리는 거동이나 굽잇길에서 트위스트 추는 실력은 한 수 위다. 아토3도 운전 실력만큼 제법 리드미컬하게 궤적을 그려낼 수 있지만 특별히 즐겁진 않다. 평온한 일상에서 더 매력이 빛난다.
1000만원 차이라면 아토3가 매력적
이 대결에서 아무래도 쫓기는 쪽은 EV3. 확연히 차이 나는 몸값과 오랜 세월 쌓아온 제조사의 노하우를 매순간 입증해야 했으니까. EV3는 멋지게 해냈다. 아토3보다 효율적으로 확보한 공간은 패키징 노하우의 승리. 간결하고 미래적인 디자인과 소재는 ‘눈으로 보는 품질’의 모범 사례다. 제조사만큼 협력 업체의 역량도 중요하단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오버 스펙으로 보일 정도인 탄탄한 주행감각은 신생 후발주자가 넘보기 힘든 내공. 다만, 첨단 기능 욕심에 옵션을 담다 보면 5000만원을 넘어선다. 반면 아토3는 옵션으로 예산 초과할 걱정 없다. 디자인과 성능도 준수하다. 전비와 항속 거리는 운전으로 얼마간 상쇄할 수 있다. 저온 성능은 상온의 96.4%(기준 75%)로 인증받았다. 결국 EV3와 아토3의 선택을 좌우할 핵심은 성능이나 디자인의 우열보다 소비 취향이다. 극단적으로 비약하면 아이폰 17 프로 맥스와 16e의 차이다. 가성비의 접근이라면, 의외로 결정은 쉽다.

BYD 아토3는 2022년 2월 중국에서 위안 플러스로 데뷔했다. 국내엔 지난 4월 중순 출시했다. 4~8월 아토3 판매는 1764대. 기아 EV3는 지난해 5월 공개해 6월부터 팔기 시작했다. 올해 1~8월 EV3 판매는 1만7041대. 아토3 판매량의 10배에 가깝다. 월평균으로 봐도 2100대로 아토3(350대)의 6배다. 그런데 출시 이후 글로벌 누적 판매는 정반대다. EV3가 10만대, 아토3 100만대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브랜드 파워다. BYD 전기차가 올들어서만 40대 이상 자연발화했다는 소문이 발목을 잡는다. BYD에선 "파우치 배터리 쓰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아토3를 포함해 블레이드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일반적인 사용 환경일 경우 화재가 발생한 경우가 전세계에서 한건도 없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2020년부터 국내에 수입한 BYD 전기버스 역시 별문제 없이 운용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다만 지난해 홍콩에서 충전 중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어 배터리 제어, 충방전 안전 시스템 등의 신뢰도가 낮은 거 아니냐는 의혹을 시원하게 떨치기는 어렵다. 어쨌든 국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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