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왕

2025-02-03

요즘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약속이 있어 외출하던 중 차창 밖으로 시위 군중이 통성기도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눈발과 함께 휘날리는 혹한의 날씨였다.

성직자가 시위를 주도하고 지도자가 무속인을 만나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소문이 돈다. 옛날 제정일치의 고대사회에서 왕은 신이자 동시에 인간이었다. 왕은 민심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번영기에는 추앙받았고 불운기에는 희생양이 되었다. 역병이나 자연재해 혹은 정쟁 등이 평화를 위협하면 왕은 모든 책임을 지고 처형대에 올랐다. 다수의 희생보다 한 명에게 전체 책임을 돌리는 것이 사회적 이득이었을 것이다.

고대사회 왕은 살아 있는 신

불법체류자 추방 명령 트럼프

‘벽 넘은 자’ 응징하는 신인가

최고의 지위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희생양이 되는 왕은 대체로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한 지도자였다. 어쩌면 운명을 받아들이는 온순한 성품이었는지도 모른다. 극단과 모순을 넘나드는 통치술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처형되기 전 신의 자격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백성에게 왕은 살아있는 신이었고, 동시에 신은 살해 당한 왕이기도 했다. 신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사회였다.

불운이 닥쳤다고 해서 모든 왕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하들도 벌벌 떨 만큼 공격적이고 강한 지도자는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가뭄이나 홍수로 백성이 도탄에 빠질 때 하늘을 우러러 기도만 하다 앉아서 당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자연재해를 일으킨 원흉을 찾아 무찌르라고 군대를 보냈다. 이른바 선제공격을 한 것이다. 파병한 군사가 돌아왔다는 기록은 없으니 아마 돌아오지 말라고 당부했을지도 모른다. 백성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잡으러 갔다잖은가? 그때나 지금이나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었다.

기원전 5세기에 저술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여러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이 강물에 떠내려가자 분개한 나머지 ‘못된’ 강에 보복을 시도한다. 그는 군사를 시켜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 강물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의 복수는 “여자들도 무릎을 적시지 않고 건널 만큼” 보잘것없는 개천 수준으로 강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여름에 시작한 공사는 이듬해 봄에 끝났는데 이웃 나라를 공격하러 가던 길이었다. 용감무쌍하고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왕은 자연일지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처절하게 응징했다.

로마를 건국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일화도 등장한다. 버려져 고아가 된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어른이 되자 도시를 세웠다. 로물루스는 자신이 로마의 끝이라고 정해놓은 경계를 레무스가 넘어가자 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내 벽을 넘는 자는 누구든 죽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드론이건 미확인비행물체건 공중에 떠 있으면 격추하라는 글을 게시했다.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가 미스터리 비행물체를 드론으로 규정하고 무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음에도 말이다. 상상하건대 만약 우주 전쟁이 벌어진다면 ‘선빵’을 맞은 외계인의 분노 때문일 것이다.

그는 또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미국 내 약 1400만 명의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약 1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엔 여러 곡절로 국적을 얻지 못한 입양아 2만 명도 있다. 미국에서 출산하면 시민권을 주던 속지주의도 사라지고 인도주의 프로그램으로 입국한 사람들의 임시 체류 지위도 해제되었다. 며칠 전엔 체포된 이주민들이 수갑을 차고 군용기에 올라타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트럼프의 조부모 역시 독일에서 온 이민자였고 모친은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였다. 미국판 이민자 대청소는 “내 벽을 넘는 자”의 응징인가?

아무리 국제사회가 자국 이익 중심이라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혹자는 그의 입이 아니라 태도를 주시하라고 한다.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처럼 곤란한 존재는 없다고 한 나의 말에 돌아온 대답이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대통령은커녕 대선 후보도 힘들었을 것 같다.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내는 저인망식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성리학의 영향인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동시에 고도의 처세술,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과 더불어 양립 불가한 인성까지 포함한다. 배우자는 물론 친인척까지 청렴해야 하니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극한 직업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임기가 5년이란 것이다. 그 옛날 희생양이 되었던 왕은 체념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 같다.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라고 한다. 혹시 한밤중에 난데없이 선포된 계엄령은 공포에 기반했던 걸까?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