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하다. “3일 동안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어요. 오랜만에 말하려니 좀 어색하네요.” 최근 진료실에서 만난 20대 후반 지호씨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재택근무 2년차, 지호씨의 삶은 어느새 고립이라는 상태에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 2010년대 이후 현대 도시의 청년들에게 혼자라는 상태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 되어가고 있다. 재택근무, 1인 가구, 파트타임, 수험준비를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들의 일상은 점점 더 좁은 방 안으로 수렴된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도 부족하고, 환기할 공간도 여유도 부족하다.
건강한 생활이 불가능하다. 인간 뇌는 몸을 움직이면서, 또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하게 설계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 생명체와 접촉하고 대화하는 일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선, 뇌 성장과 발달을 위한 필수적 자극이며 영양분이다. 그러나 밀집된 도시 환경은 생물로서 자연과 동료와 움직임을 그리는 우리의 기본적 욕구를 차단한다. 오직 효율성만 추구하는 사회가 운동뇌, 감정뇌를 고려치 않고 인지적 효율성을 강요함으로써, 외려 구성원들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방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다. 고립된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치명적이다. 수행에 대한 과도한 인지적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왜곡하고, 자기비하의 악순환을 만든다. 대화 없는 공간에서 뇌는 냉정한 판단만 반복하며 점점 더 경직된다. “난 부족해, 안 되겠어, 늦었어”라는 자책의 목소리만 커져간다.
특수하다. 한국 사회의 고립은 더 구조적이다. 강준만 교수가 지적했듯 고도의 일극주의, 승자독식주의, 속도주의, 연고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사회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식민지배와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성공이란 이름으로 개인은 끝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한다. 수직적 신분상승과 양적 팽창만 좇고, 사회적 신뢰 대신 연줄을 통한 권력과 부를 탐한다. 이는 결국 개인이 사회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결과를 낳는다.
청년들은 쉬면 불안해지기에, 비효율적이지만 끊임없이 검색하고 고쳐가며, 밤새 무리하기를 반복한다. 고생 중독은 개인의 성장을 저해한다. 삶의 가치를 생산성이나 쓸모로만 따지다 보면 결국 각박하고 비인간적인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열쇠는 세대 간 소통에 있다. 청년들이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게 하려면 사회와 어른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경청과 수용, 인정이 중요하다.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부족한 상대를 견디며 맞추어가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먼저 청년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서열화된 사회는 세대, 지역, 성별, 수입으로 나뉘어 각자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소통의 난도가 높다.
아예 프레임을 바꾸어, 모든 세대를 위한 뇌의 균형 잡힌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 기계화와 도시화로 인간의 삶이 위협받는 지금, 구성원들의 건강한 정신과 신체가 바로 사회의 경쟁력이니 말이다. 이제 뇌건강을 위해 기억력과 판단력을 챙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정과 신체, 자연과의 접촉이 함께할 때 우리의 뇌는 진정으로 건강해진다. 햇볕을 쬐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움직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뇌가 원하는 진정한 효율성일 것이다.
가능하다. 우울한 이들에게 여럿이 동네 꽃밭 가꾸기, 운동 모임, 봉사활동 등을 권하는 영국의 ‘사회적 처방’처럼 우리도 고립의 문제를 사회적 관계 회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도시 공간을 재설계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청년들에게 좋은 관계의 예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뇌는 더 넓은 세상을, 더 깊은 관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