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분과위원장 끝이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둔 박지영이 티잉 그라운드 위로 서자 뒤편의 대형 LED 전광판에는 이러한 문구가 게시됐다. 선수 겸 선수분과위원장으로 동분서주한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의 마음이 담긴, 재치 넘치는 한마디였다.
다사다난한 1년을 보낸 KLPGA 투어가 지난 10일 강원도 춘천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 올드코스에서 열린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 시즌 31째 대회로 펼쳐진 이날 최종전에선 마다솜이 우승을 차지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또, 윤이나가 대상과 상금왕을 차지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올해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은 최종전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 예년과 다른 방식으로 펼쳐졌다. 먼저 기존 70명대의 출전 선수 규모를 60명으로 줄여 정예 경기의 의미를 더했다. 지난해까지는 내년 시드가 걸린 상금 60위 전후의 선수들이 함께 출전해 생존 싸움의 성격이 짙었지만, 올 시즌에는 직전 대회인 S-OIL 챔피언십에서 시드 다툼을 끝내고,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을 통해 마지막 개인 타이틀 경쟁을 유도했다.
지난 1년간 치열하게 싸워온 선수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의 시간도 마련됐다. 바로 전광판 응원 문구다. 대회 주최사는 2라운드를 마친 뒤 출전 선수들에게 전광판으로 띄울 응원 문구를 개별적으로 받았다. 자신을 향한 격려를 비롯해 1년 동안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팬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 등을 골고루 모았다.
이렇게 모인 응원 문구는 최종라운드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의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다. 가장 재치가 넘쳤던 주인공은 역시 박지영. 지난 2년간 선수분과위원장으로 고생한 박지영은 “드디어 선수분과위원장 임기가 끝났다”는 문구를 게시해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다. 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전광판 문구를 직접 찍으며 홀가분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수들이 투표로 직접 뽑는 2년 임기의 선수분과위원장은 KLPGA와 현역 선수들 사이에서 가교 노릇을 한다. 선수를 대표해 KLPGA와 여러 현안을 논의하고, 또 선수들의 의견을 취합해 KLPGA로 전달하기도 한다. 일반 회사로 치면 노사협의체 대표의 성격을 띤다.
이날 최종라운드가 끝난 뒤 만난 박지영은 “선수분과위원장은 동료들의 신임을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있는 위치다. 알게 모르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부담도 된다. 그래서 ‘선수분과위원장이 드디어 끝났다’는 응원 문구를 택했다”고 웃었다.
그런데 박지영의 바람과 달리 현장에선 박지영이 2년 더 선수분과위원장을 맡았으면 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박지영은 “정말 고민된다”면서도 “꼭 2년을 더 해야 한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선수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 응원 문구를 작성했다. 올해 신인상을 확정한 유현조는 “날아올라 저 하늘로”라는 메시지로 내년 시즌 더 높은 도약을 약속했다. 올 시즌 3승을 거둔 이예원은 “오늘까지 잘하자!”며 최종전까지 선전을 다짐했다. 또, 조혜림은 “내일부터 백수다”라는 재치 넘치는 문구로 당분간 골프는 잊고 휴식을 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이벤트를 준비한 대회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추억을 남길 만한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전광판 응원 문구를 생각해냈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는 팬들이 선수를 위해 작성한 문구를 대회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별했고, 최종라운드에선 선수들이 직접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상영했다. 다행히 출전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이번 이벤트가 빛났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은 추첨을 통해 선정된 팬들이 코스 안쪽까지 진입할 수 있는 인사이드 더 로프 이벤트와 4번 홀(파3) 티샷 후 그린으로 향하는 선수들과 손뼉을 마주칠 수 있는 하이파이브 이벤트를 마련해 갤러리와 선수가 함께 호흡하는 최종전의 의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