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주한미군사령관은 ‘반정치인’···‘가스라이팅’ 당하는 한국 언론

2025-08-29

한·미 정상은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회담에서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부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군사적 사안을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구상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걸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친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트럼프의 이 같은 대답은 미 국방부가 진행 중인 전 세계 미군 배치 조정 등 국방전략 재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이 결정되면 한국 정부 의견은 하나의 참고사항 정도로 그칠 개연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한국 측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 측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합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 분쟁 개입을 한국민이 존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월 8일 한국 기자들을 평택 미군기지로 불러 기자간담회를 가진 것도 언론 플레이의 일환이었다. 국내 언론은 한반도 주둔군이 아닌 거점 기동군으로서 주한미군의 대만 사태 개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나아가 대만 유사시 미국이 한국군 동원을 요구할 것이라는 추측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2008년 ‘주한 美 2사단 순환 배치軍’이란 제목의 기사를 단독보도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2사단을 ‘장기 주둔군’이 아닌 ‘순환 배치군’으로 운용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전 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2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중무장 장비를 한반도에 고정 배치하는 대신 혼합 기갑부대인 1전투여단 병력을 중심으로 2사단 병력을 순환 배치군 형태로 운용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정 임무만을 수행하는 것은 한계라는 게 미 정부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순환 배치군’은 필자가 처음으로 만든 용어다. 당시 주한미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 기사의 취재원은 “미군이 2사단 병력을 ‘시프트’(SHIFT·교대) 방식으로 순환 운용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필자는 순환 배치란 단어가 미군 병력을 ‘시프트’ 방식으로 순환해 운용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가장 잘 전달하는 표현이라고 여겨 사용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오자마자 주한미군사령부는 오보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 미 2사단을 순환 배치군으로 운용할 계획’이라는 경향신문 보도는 주한미군의 변환 노력을 잘못 기술하고 있다”면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2사단이 순환 배치군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시 벨 사령관은 보도자료에서 “한반도에 대한 미래 미국의 공약에 대해 근거 없이 추정하거나 잘못 보도하는 것은 한·미동맹 관계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방위공약을 존중할 것이다.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환영받고 한국민이 원하는 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주한미군은 물론 대한민국 국방부조차 미 2사단의 1개 여단이 순환 배치군으로 운용된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공식 발표한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흐르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주한미군의 순환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그 용어조차 경향신문이 보도한 대로 굳어졌다.

주한미군은 한국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대응하면서 오보를 확대 재생산시키는 데 한몫을 해왔다. 이는 국내 언론의 오보가 주한미군의 SC(전략 커뮤니케이션)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과거 잘못된 보도사례를 보면 주한 미8군 524정보대대가 북파 공작원 양성 부대로 둔갑하기도 했고, 미 2사단에 배속된 기갑부대원들의 기지 지하시설 방호훈련이 졸지에 김정은 참수훈련으로 바뀌었다. 이는 국내 신문과 방송 매체들이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미군 홈페이지 내용을 받아쓰면서 살붙이기에 급급해 벌어진 일이었다.

‘전작권’ 속마음

브런슨 사령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주한미군 감축 전망과 전작권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주한미군 감축 전망에 대해서 “숫자보다는 능력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한미군 숫자가 줄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앞서 나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주한미군 감축 보도를 확인하는 수순이었다. 미국은 통상 한국에 불편할 수 있는 군사적 사안에 관한 결정을 사전에 흘리는 통로로 월스트리트저널을 활용해왔다.

문제는 전작권 전환이었다. 브런슨 사령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합의된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은 채 서두를 경우 한반도 안보태세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쉬운 지름길을 택하게 되면 한반도 내 전력의 준비태세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작권 전환을 이행해가면서 기존 조건들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지휘 통제, 탄약, 능력 관련 조건 모두 여전히 유효하며, 그 조건들은 설정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작권 전환이 단순히 완료됐다고 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이롭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작권 전환 임기 내 추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국내 언론은 그의 발언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군의 대북 억제 주도를 전제로 하는 한·미동맹 현대화는 전작권 전환과 함께 진행돼야 합리적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주둔군에서 평택기지를 거점으로 하는 기동군으로 성격이 변하면 전작권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 변경에 나서면서, 전작권 전환은 한국 정부보다 오히려 미국 측이 더 절실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환경을 읽고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전작권의 조속한 전환에 매달리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은 먼저 요구하는 쪽이 관련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브런슨 사령관의 전작권 전환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한국 여론을 자극해 전작권을 빨리 한국군에 넘기려고 하는 역설적 발언이라는 의심이 든다. 주한미군의 순환 배치도 오보라고 했던 그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의 위상은 사실상 ‘반정치인’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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