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기의 문화기행] 중국식 이슬람 사원 청진사(请真寺)를 가다

2025-01-17

시안은 실크로드 관문도시답게 곳곳에 모스크에 있다. 시안에 있는 회족의 이슬람교사원을 청진사(淸眞寺)라고 한다. 당나라 시대 장안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을 하기 위하여 수많은 위구르인, 페르시아인, 아랍인 등 서쪽 지역에 사는 외국인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특히 당태종이 아랍인들의 중국 거주를 허락하며 많은 이슬람인이 중국 거주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오랫동안 한족(漢族)과 혼혈되어 후이족(회족 回族 Huízú)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중국 문화에 동화된 회족은 주로 한어(漢語)를 전적으로 쓰며 한화도(漢化度)가 높은 이슬람교를 믿는 집단을 형성하였다. 현재 이들의 외모는 거의 중국인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회족의 성격은 조상들의 문화적 영향을 이어받아 상무강직(尙武剛直)하고 농업뿐만 아니라 군인, 여관업, 교역업(交易業), 상공업 등 개방적으로 외부 세계와 교역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 성씨 중 마(馬)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 마 씨가 무하마드에 마! 마 씨에서 유래되었다. 이 아랍인들이 통일신라, 고려시대 때 시안을 거쳐 우리나라를 왕래하면서 교류하였다. 아마 고려가요 쌍화점(만두)에 나오는 회회아비(만두집에 만두를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는 회회아비)가 이 회족은 아닐까?

시안의 청진사도 당 현종의 명을 받아 742년에 건설되었다. 둥근 돔과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지고 미나렛이 연상되는 전통적인 모스크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중국식 불교사원과 이슬람문화가 혼융된 형태의 중국식 모스크다. 1000년 전 이 당시는 지금의 돔, 미나렛식 모스크가 아직 정형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건축 양식, 즉 불교사원 형태로 지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1000년 전 중국 시안에는 이미 시리아,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이슬람인들이 들어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에 중국 문화를 결합하여 새로운 회족 문화를 창조했다. 그만큼 그 당시 시안은 국제적인 교역 도시였다.

회족 중에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많은 부분 중국 문화에 동화되었으나 대부분은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중국 내 약 1000만 명이 있으며 전체 이슬람교인의 절반을 차지한다.

중국 이슬람에는 화사교단과 18세기 마명심이 세운 자흐리 교단이 있으며 두 교단 사이 충돌이 있었다. 자흐리 교단이 화사교단을 우대하는 행정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다가 1871년 자흐리 교단의 지도자인 마화룡이 처형된 사건도 있었다.

현재 인구 약 600만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영하회족자치구)가 있으며 약 35% 정도가 후이족이다.

청진사에 가면 당, 명, 청 황제들이 쓴 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강희대제, 건륭제, 당 태종, 현종 때부터 이슬람인들이 거주했으니 명, 청을 거치면서 이슬람 신도가 수천에 이르렀으며 황제가 시안을 오면 종루, 고루, 시안성 그리고 회족거리, 청진사를 오지 않았겠는가? 이 회족거리(回民街)에 가게 되면 꼭 이 청진사에 들러서 중국식 모스크를 한번 볼 것을 강추한다. 운 좋으면 확성기가 울리고 예배가 시작하는 광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중국 시안, 위구르 신장을 비롯한 중국 내 이슬람인들, 그 수가 수천만에 이른다. 중국어를 못하던 예전 신장 우루무치에서 만난 어여쁜 여인도 이 회족이나 위구르족의 후손이 아닐까?

권오기 여행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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