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었던 스물다섯.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은 박영운은 꿈을 접어야만 했다. 하반신부터 차오르는 마비는 무대 위를 꿈꾸던 젊은 배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만 남는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배우 박영운은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버텨낸 원동력을 비롯해, ‘폭군의 셰프’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소감을 전했다.
“2015년에 길랑바레 증후군 판정을 받았어요. 어느 날 일어났는데 걸음걸이가 이상하더라고요. 7군데 병원을 돌다 큰 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석 달 넘게 입원했죠. 약도 없는 병이라 주사로 마비가 더 오지 않게 막는 수밖에 없었어요. 의사가 ‘앞으로 무대에 못 설 수도 있다’고 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졌어요. 살아나기만 하면 뭐든지 하자,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길랑바레 증후군은 면역 체계 이상으로 인해 신경이 손상돼 근육이 마비되는 희귀 난치병이다. 다리에서 시작된 마비가 점차 온몸으로 번지며, 심하면 호흡 근육까지 마비될 수 있다. 박영운은 이 병과 석 달 넘게 싸워야 했다.
“그때를 버텼기에 지금 제가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완벽하게 나았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본인의 젊음에 감사하라’고 하셨어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그 이후로는 모든 일상이 그저 행복할 뿐이에요.”
박영운은 희귀병을 완치한 뒤, 뜨거운 열정으로 144개의 기획사에 프로필을 돌렸고 2017년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tvN ‘폭군의 셰프’를 만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최고의 순간 과거로 타임슬립한 셰프 연지영(임윤아)이 절대 미각의 폭군 왕 이헌(이채민)을 만나며 벌어지는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최고 시청률 20%,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드라마를 너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고생하며 찍었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저 감독님 필모그래피에 제가 캐스팅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죠.”

박영운은 극 중 왕 이헌 곁을 지키는 우림위장 신수혁으로 분했다. 절제된 대사와 묵직한 눈빛으로 왕을 끝까지 지키는 충신의 면모를 그려냈다. 그러나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 대사의 90%가 ‘전하’라는 단어인데, 더 임팩트 있게 하고 싶어서 ‘전하’만 수천 번 넘게 연습했어요. 감독님과 한 달 반 동안 톤을 잡았는데, 방송으로 보니 왜 그렇게 중요하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노력이 만들어낸 장면은 끝까지 남았다. 결말에서 남긴 한마디 “전하, 무사히 돌아오시옵소서”. 왕 이헌이 미래로 떠나 홀로 남겨진 엔딩에 대해 박영운은 깊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궁에 남아 전하를 기다리는 결말이 수혁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120% 만족합니다. 남아서 끝까지 지키고 있다는 설정이 오히려 충성심을 더 깊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 이미지 변화를 체감하는 계기도 됐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역할을 맡아왔다면, 이번엔 묵직함 하나로 모든 걸 표현해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직전 작품 ‘세 번째 결혼’에서는 철없는 재벌 3세, 악역이었는데 이번에는 충직한 캐릭터였잖아요. ‘같은 배우가 맞아?’라는 반응이 감사했어요. 배우로서 이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어 행복했죠.”
촬영 중간에는 결혼이라는 경사도 있었다. 지난 5월 결혼한 박영운은 촬영 때문에 신혼여행을 미뤘다.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결혼이 배우로서의 생활을 바꾸지는 않았다. 다만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오로지 수혁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아내도 이해해줬습니다. 드라마를 본 아내가 ‘연기 많이 좋아졌네’라고 해줬는데, 그 말이 가장 기뻤어요. 그리고 결혼 전이나 후나 루틴은 똑같아요. 오디션 다니고 준비하는 건 같죠. 하지만 책임감은 분명히 생겼습니다.”

‘폭군의 셰프’는 그에게 증명의 장이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드는 사람의 자세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시즌2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시즌2가 만들어지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하겠습니다. 수혁은 아직 궁에서 전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박영운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검색해보는 배우’, ‘호기심 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드라마 보다가 ‘얘 누구지?’ 하고 검색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성실이거든요. 항상 성실하게, 초심 잃지 않고, 까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