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삶은 사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쉼 없이 조잘대던 아이도 차츰 말이 줄고 표정이 사라져요. 방문은 굳게 닫힙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아이가 양육자는 낯설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사춘기를 겪는다는 명제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질풍노도의 한복판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는 것이죠. 한 지붕 아래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사춘기 아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에서 모범생 첫째, 느린 학습자인 둘째를 키우는 일상을 진솔하게 풀어냈던 이은경 작가가 이번엔 사춘기를 관찰합니다. 그는 초등 교사 출신의 교육 전문가이자 70권이 넘는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한데요. 앞으로 8주 동안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와 에세이 칼럼 ‘옆방에 사춘기가 입주했습니다’를 연재합니다. 사춘기 자녀와 유쾌하고 다정한 동거를 꿈꾸는 양육자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첫 화는 사춘기의 서막을 알린 아들의 낯선 냄새로 시작합니다.

👃냄새가 난대요, 냄새가
둘째마저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까지고 귀여울 줄만 알았던 나의 막내가 교복을 입고 현관을 나선다. 믿기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초등학생이 사라지다니.
중학생. 귀여움 타령만 하고 보기엔 어딘가 비장함이 서리는 단어다. 사실 ‘귀엽다’는 말에는 ‘아직 좀 못 미덥다’는 감정이 섞여 있다. 초등 시절부터 미덥지 못했던 학교생활에 이어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었다.
학교에서는 툭하면 전화가 걸려왔다. 느린 학습자인 둘째는 친구들과의 소통이 부드럽지 않은 탓에 쉬는 시간마다 어김없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중인 듯했다.
말이 어긋나고, 그걸 이해해 주기 어렵고, 그게 서운하거나 억울하고. 사춘기 호르몬으로 가득한 중학생들의 교실에서는 거의 매일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필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의 마음이 살랑대던 날이었다. 아들 둘 키우며 영락없이 늙어가는 아줌마가 살랑대기로 작정을 하면 옷감부터 달라진다. 교복처럼 매일 걸치고 다니던 뻣뻣한 청바지 말고, 살랑거리는 시폰 원피스가 오늘의 원픽이다. 아줌마는 나비처럼 날아 사뿐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머, 너 아들 둘 엄마 맞아? 요즘 왜 이렇게 예뻐지는 거야?”
아줌마들의 모임은 늘 이런 식의 과장된 외모 칭찬으로 시작된다. 거짓은 아닌데, 그렇다고 사실도 아니라는 걸 피차 인정한 이들끼리의 의식 같은 거다. 이거 안 할 거면 굳이 안 만나도 된다. 남편 욕에 애들 욕은 채팅방에서 해도 충분하니까.
원피스 칭찬으로 시작해 몸매, 머릿결, 피부, 신발, 목걸이, 네일 컬러까지. 대근육에서 시작해 소근육으로 천천히 훑어 내려가는 섬세하고 체계적인 칭찬 의식이 막 끝나갈 무렵, 전화가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학교다. 그 시절 걸려온 전화 열 통 중 여덟은 학교였다.
‘또 싸웠구나. 오늘은 조용하다 했더니 우리 아들, 오늘도 한 건 한 거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싸움이 아니었다. 차라리 싸움박질이 나았을지 모를, 그런 이야기가 찬찬히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