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고(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유족에게 사망 관련 진상조사위원회 참여를 제안했지만 유족이 거절했다. 유족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가해자들이 부인하고 회사도 사건을 은폐하려는 상황에서 셀프 진상조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6일 오 기상캐스터 유족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MBC가 이번 사건을 중하게 여겼다면 처음부터 유족에게 연락했을 것”이라며 “이제와서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라는 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MBC는 첫 입장문에서 ‘프리랜서인 오요안나’라며 회사와 선을 그으려고 했다”며 “죽음에 대한 회사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이번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안나와 같은 을과 병들의 죽음에 경종을 울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오씨가 생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MBC는 지난 3일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했다. 2021년 MBC에 입사한 오씨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지만, 지난달 27일 한 매체가 동료 기상캐스터들에게 시달렸다는 유서 내용을 보도하면서 직장내 괴롭힘 논란이 떠올랐다. MBC는 지난달 31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에 법무법인 혜명의 채양희 변호사를, 외부 위원으로는 법무법인 바른의 정인진 변호사를 위촉했다”고 밝혔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늘 죄송하다고 하고 살아”
오씨의 지인들은 그를 일을 사랑하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씨의 중학교 친구 A씨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신분이 불안정해 돈을 아끼겠다며 회사 숙직실에서 3개월 동안 생활하기도 했다”며 “불편했을 텐데 ’택시비도 아낄 수 있고 새벽 방송에 늦을까 봐 걱정도 안 해도 된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끼리 모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요안나는 ‘MBC 기상캐스터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사가 비극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인들은 오씨가 회사 선배들의 괴롭힘에 대해 자주 하소연을 했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언을 하는 등 망신을 주거나, 당일에 방송을 대신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발음이나 방송 태도 등으로 꾸짖는 일도 많아 힘들어했다고 친구들은 기억했다. 고등학교 친구 B씨는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나가서 ‘너무 잘 됐다’고 했더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하더라”며 “선배들이 ‘네가 뭔데, 뭘 할 수 있길래 거기를 나가느냐’며 더 뭐라고 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B씨는 지난해 9월 16일 고향인 광주에서 고인과 만나기로 했었다고 한다. 사망 전날인 같은달 14일 오후, 오씨는 “할말이 너무 많아. KTX도 예매했으니 곧 만나자”고 했다. B씨는 “평소 ‘회사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항상 죄송합니다를 달고 산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느날은 ‘내가 살면서 이렇게 토할 정도로 울어본 적이 없다’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나서 잘 위로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억울하다 가만히 있으면 바뀌지 않아” 후배 위로하기도
대학교 후배 C씨는 그를 ‘착하고 속 깊은 든든한 언니’였다고 회상했다. 장애를 가진 C씨는 오씨와 학교 장애인 도우미 활동으로 연을 맺었다. 그는 “언니가 학사관리부터 필기까지 도와줬는데 졸업하고 더욱 친해졌다”며 “사망 3일 전쯤 ‘이제 선선해졌으니 만나자. 휠체어 다니기 좋은 장소를 찾아볼게’라고 한 게 마지막 대화였다”고 말했다. C씨는 “언니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 모르고 내 직장 생활 하소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절대 억울한 채로 있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조언해줬다”며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싶다”고 전했다.
한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전국 기관장 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이 사건과 관련해 “관할 서울서부지청도 사실관계를 면밀해 조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도 내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