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제기해온 ‘부정선거론’을 증거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여당이 참패한 지난해 4월 총선 결과가 잘못됐다는 부정선거론은 윤 대통령 측이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이미 선거관리위원회와 국가정보원 등이 해명하고 반박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헌재가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검증하고 정리하면 이를 둘러싼 국민적 분열과 논란이 해소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가 전날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두 번째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사실조회를 수용함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는 문서 제출 준비에 착수했다. 사실조회는 공공기관 등에 문서 등본이나 사본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다. 윤 대통령 측은 헌재에 선관위원 및 사무총장 명단, 2020년 총선과 신종 코로나19 당시 선관위 선거연수원에 체류한 중국 국적 사무원 명단 등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를 가지고 그들이 주장해온 부정선거론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측은 헌재 변론이 열리기 전부터 수없이 부정선거론을 설파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 바 있다. 계엄을 발동한 배경으로 ‘부정선거=국가비상사태’라는 논리도 내세웠다. 모두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전날 변론을 마치고 취재진에 “(선거 관련) 시스템 점검이 계엄의 중요 이유 중 하나”라며 “향후 지방 선거,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규명하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은 변론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더 구체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는 선관위의 선거관리전산시스템을 들어 “전산시스템의 비밀번호 ‘12345’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연결번호로서 중국 등 외부에서 풀고 들어오라고 만들어 놓은 듯이 기이한 일치성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미 수차례 윤 대통령 측 주장이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가 없음을 해명했다. 선관위는 전날에도 발표자료를 통해 가짜투표지, 해킹무방비, 단순한 프로그램 비밀번호 등 윤 대통령 측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이 끊임없이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면서 국론 분열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MBC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29%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좁히면 응답 비율은 65%였다.
부정선거론은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하는 탄핵심판 소추사유와는 직접 관련되지 않는다. 국회 대리인단 김진한 변호사는 전날 기자들에게 “피청구인(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선거부정은 근거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군을 동원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침입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논리”라고 말했다.
헌재가 심리 과정에서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하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방승주 한양대 교수는 “헌재가 심판 대상인 부정선거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다기보다, 윤 대통령 측에서 하는 주장을 선관위의 객관적 자료로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부정선거는 일부 극우 유튜버의 망상이지만, 거기에 꽂혀서 계엄군을 선관위로 동원하는 건 그 자체로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