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꼼꼼히 따지되 피하지 말자”…한미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협력

2025-06-09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트럼프의 통치 스타일에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은 경쟁국이나 동맹국이나 매한가지다. 솔직한 듯 떠벌이고, 거짓말인듯 진짜인 말이 뒤섞여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거침없는 선언이 동맹국을 무시하고 있지만,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5일(워싱턴D.C 현지시간) “우리는 알래스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가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며 수조 달러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 우방국들과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기간을 일방적으로 90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에는 한미간 협상을 매듭지어야 한다. 알래스카 가스전은 미국 내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고 높은 개발비용와 오랜 개발시간 때문에 단단한 협약이 전제될 때까지도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런데 오는 7월로 다가온 한미 관세협상을 위해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이 협상의 전제조건에 오른다면 피해가지 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발비용이 실제 집행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한번 투자되면 이해관계자 모두가 공동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협력하면 쉽게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지레 겁먹고 뒤로 빼지 말고 “일단 해보자”는 협상 태도를 보이는 게 낫다는 조언이다.

“셰일가스 여력 20년이면 고갈…가스전 개발 의지 진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전임 조 바이든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알래스카 자연보호구역에서 석유 및 가스 시추를 허용했다. 이어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에 각각 미국 알래스카주의 액화천연가스(LNG) 공동개발을 양자 협상카드로 제시했다.

북극권 가스전을 개발해 알래스카 북부의 노스 슬로프로부터 남부의 니키스키에 이르는 약 807마일(약 1300킬로미터) 파이프라인을 건설, 연산능력 2000만 톤의 LNG 플랜트를 새로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일본의 경우 자국 가스 총수요의 30%에 이르는 천연가스를 알래스카 가스전을 통해 들여올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입장에서 알래스카 가스전은 가뭄으로 운하물이 메말라 항행이 불가능해지는 파나마 운하를 지나야 하는 미국 동해안 LNG 프로젝트와 달리 수요가 가장 높은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쉽게 실어 나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10년 시작된 셰일가스도 약발이 다했기 때문에, 트럼프는 2기 집권과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 분야 성장동력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종순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현재 셰일 가스 생산과 판매가 가능한 기간이 기껏 20년 정도 남았다고 보기 때문에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나 일본 입장에서는 당연히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낸 대가로 알래스카 LNG를 더 사야 하는 형국이다.

높은 투자비용, 상업화에 10년 가까이 걸려

알래스카 가스전에 만일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단연 ‘높은 개발비용’이다. 셰일가스와 달리 전형적인 가스 매장지 개발은 추출 즉시 수출과 운송 등 산업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구개발에 수 십억 달러의 자본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은 특히 미국의 가스 구입 압력과 7조엔 가까운 거액의 공동개발 투자가 부담스럽다. 일본 전문가들은 “중동산 LNG보다 비싼 값싸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긴 사업기간도 만만찮은 장애물로 꼽힌다. 1~2년, 심지어 4년 만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상 프로젝트 시작부터 최초의 상업적 석유 생산까지 최소 5~7년이 걸린다. 투자 기업이 올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 시작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에야 첫 상업적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한 번 더 대통령이 되면 모를까,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차차기 대통령 임기가 끝나야 상업용 이익이 나올 수 있다.

다음이나 다다음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원이라면, 자연보호구역에서의 석유와 가스 생산을 다시 금지할 가능성이 크다. 프로젝트에 투자한 수십억 달러가 회수되지 않을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을 안고, 선뜻 투자할 기업이나 나라가 있을까.

“북극항로 기항지 한국에 알래스카 가스전은 기회”

에너지 순수입국인 한국은 높은 비용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와 국제협력 강화 차원에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너지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공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석유·가스 자원개발 투자 확대로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해외자원개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반도 지정학을 지경학으로 변모시키는 남북러 에너지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강화, 분단과 갈등 비용 축소를 꾀하자는 아이디어는 실제 많이 진척되기도 했지만, 미국의 견제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역 에너지 국제협력가스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6월 3일 이후 탄생하는 새 정부는 진보든 보수든 동북아 국가간 전력·가스·재생에너지 등 에너지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은 트럼프의 파상적 관세 공세의 예봉을 일단 무디게 한다는 측면에서 피하지 말자는 주문이다. 특히 부산을 북극항로의 기항으로 정하는 데 반드시 동의를 얻어내면 물류길이 파생할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한국이 먼저 “못하겠다”고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밖에 미국과 러시아, 중동 등으로부터 에너지 도입선을 다각화하고, 각 판매국들로부터도 싱가포르나 일본 등 주요 LNG 소비·거래국과 공동구매, LNG 스왑 등 협력을 강화,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도 적극 검토하자는 목소리다.

임종순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신규 도입계약 체결 때 가격조건 외에 목적지 제한 완화 등 유연성 조항을 확보, 수요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어디로 뛸 지 모르는 트럼프…정공법이 정답

트럼프 스타일은 한국과 일본이 그런 뜻을 비춘 적도 없는데, 선언부터 하는 식이다. 알래스카 가스전개발협력도 그랬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표정을 찡그릴 수조차 없다. 트럼프가 다자간 틀(이른 바 규칙기반의 세계질서)을 완전히 벗어나 ‘쌍무적’ 관세협상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짐짓 억지 웃음으로라도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호응하는 게 동맹의 면모를 빛나게 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절대 패권의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국내용, 대외용 메시지를 가려서 할 필요도 없다.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원하고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뒤 “이 프로젝트는 미국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가의 에너지 독립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엄청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에너지 자원을 공급하고 이 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청중의 박수를 유도한다. 트럼프는 타고난 만담꾼이자 얼치기 야바위꾼이지만, 미국인이든 동맹 국민이든 그의 익살스런 ‘몰이’에는 속수무책이다.

통상전문가들은 트럼프에게는 보편적 원칙이나 가치를 말하는 대신 ▲트럼프가 하는 일의 주관적 가치를 칭송하고 ▲미국에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약한 모습 대신 단호하고 분명한 어 조로 당당하게 협상하라고 조언한다. 말 돌리는 것, 긴 영어는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화법이라는 조언이다. 이른바 ‘정공법’을 취하되, 짧고 분명한 말투로 협상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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