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티맥스ANC, 다시 스타트업이 되길

2025-06-25

이전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20년 넘게 지켜본 박대연 티맥스ANC 회장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어쩌면 허무맹랑한,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24일 기자간담회에 무대에 선 그는 다소 초췌해 보였고 과거처럼 자신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박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회사가 임금 체불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100조원 매출을 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큰소리를 쳤는데 1년 사이 너무 초라해졌다. 박 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자신이 창업해 성공을 거둔 두 회사(티맥스소프트, 티맥스데이터)를 투자자들에게 빼앗겼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티맥스ANC뿐이다.

티맥스ANC는 고사 직전이다. 1000명이 넘었던 직원들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대부분 회사를 떠났고, 자금은 약 100명 정도만 남아있다. 박 회장은 임금체불이라는 악조건에도 회사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회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언론 앞에 나선 것은 투자유치를 위해서다. 티맥스ANC는 이날 기자간담회와 투자설명회를 연이어 진행했다. 투자를 받아야 임금체불을 해결하고, 다시 도약할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은 티맥스ANC의 최우선 해결과제다. 임금체불 기업은 정부나 공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수 없다. 새 정부에서 AI 수요가 대폭 늘어날 전망인데, 임금체불 상태를 해결해야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티맥스ANC의 투자유치는 쉽게 될까? ‘티맥스’와 ‘박대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투자자들의 기대를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이제는 원대한 포부를 넘어 투자자들에게 실체적인 가치를 증명해야 투자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과 티맥스ANC가 생각하는 ‘실체적인 가치’는 이날 공식 출시를 선언한 ‘가이아’다. 가이아는 수년 전부터 박 회장이 외쳐온 ‘슈퍼앱 플랫폼’이다. 그는 슈퍼앱 플랫폼을 통해 100조원 매출을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가이아 브랜드의 첫 제품은 노코드 앱 제작 솔루션인 ‘가이아큐브’다. 생성형 AI·이미지·음성 인식 등의 기능이 포함된 앱을 클라우드 네이티브 구조로 코딩 없이 제작할 수 있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다소 위축돼 보이기는 했지만 박 회장의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가이아큐브가 엔터프라이즈 코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한 유일한 노코드 솔루션이라고 장담했다. (요즘 개발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커서’와 같은 곳은 홈페이지 수준의 간단한 앱을 만들 수 있을 뿐이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그는 “가이아큐브의 강점은 엔드투엔드 지원”이라며 “클라우드와 AI 지식 없이 클라우드 네이티브 앱과 AI 네이티브 앱을 자동 구축하고, IT 비용을 1/3로 절감, 완벽한 보안, 홈페이지 수준의 간단한 앱을 넘어 기업용 엔터프라이즈 앱 제작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이아 개발에 약 1조원을 썼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회장이 말하는 ‘가이아큐브’는 생성형 AI부터 클라우드네이티브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다. 한마디로 ‘못하는 게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최고”라는 메시지는 현재의 티맥스ANC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동안 거창한 비전을 제시해왔지만 현실에서는 그 비전이 구현되지 못했다. 지금은 투자자와 고객이 의구심어린 눈으로 티맥스ANC와 박대연 회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티맥스ANC에 필요한 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세계 최고의 솔루션이 아니다. 고객의 작고 구체적인 문제 하나라도 명확히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 즉 MVP(Minimum Viable Product)가 먼저다.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일반적인 성장하는 방법론이다.

특히 지금의 티맥스ANC처럼 신뢰가 흔들린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1조원을 투자했다’는 말보다는 지금 당장 돌아가는 고객 사례 하나, 사용자의 만족스러운의 목소리 하나가 더 절실한 시점이다.

박 회장은 더이상 국내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의 리더가 아니다. 티맥스ANC가 다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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