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을 뽑기만 하면 끝인가요. 지원해준다고 약속했으면 선발한 인원수에 맞게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올여름 후계농업경영인육성자금이 조기 소진돼 청년들의 신규 대출이 막힌 가운데 내년에도 예산 부족으로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청년농 육성이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보할 열쇠이자 윤석열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한 만큼 국회에서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8월12일 후계농육성자금 8000억원의 95%가 소진되면서 신규 대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사업은 11월에 자금이 소진된 것에 견줘 올해는 훨씬 이른 시점에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NH농협은행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청년농 등에게 안내했고, 9월20일엔 신규 대출을 막는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대출이 막혀 농지 매매 등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지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자 농식품부는 8월까지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낸 이들에게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500억원씩 2번, 총 1000억원의 자금을 추가 배정했다. 농업자금이차보전 사업 중 다른 사업의 불용 예산을 활용한 미봉책이었다.
후계농육성자금은 청년농·후계농이 농지·시설 등을 마련할 수 있게 창업자금을 저리 융자해주는 사업이다. 정부는 정책금리와 시중금리의 차이를 보전하는 이차보전 방식으로 지원한다. 대출은 청년농·후계농에 선정된 후 5년 안에 받을 수 있다.
자금의 조기 소진은 대출 수요가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정책 대상인 청년농 선발인원이 지난해 4000명에서 올해 5000명으로 늘었다. 대출 조건도 좋아졌다. 종전에 3억원까지였던 대출 한도가 2023년부터 5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시기 대출 금리는 2%에서 1.5%로 0.5%포인트 낮아졌다. 상환 조건도 5년 거치 10년 상환에서 20년 상환으로 늘어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대출 조건이 좋아지면서 최근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에 후계농육성자금에 배정된 농업자금이차보전 예산은 871억4300만원으로 올해 688억7000만원보다 늘긴 했지만 신규 대출 규모는 올해 8000억원에서 내년엔 6000억원으로 줄게 된다. 예산이 늘었는데도 신규 대출 규모가 줄어든 까닭은 누적 대출액이 많아지면서 정부가 보전해야 할 이자 차액 규모가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이번에 예산을 요청하면서 추정한 내년도 대출 평잔(평균잔액)은 3조2950억원으로 올해 2조528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자금 수요는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내년에 청년농과 후계농을 각각 5000·1000명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우수 후계농도 500명 뽑는다. 모두 올해와 같은 규모다. 해당 자금의 정책금리가 여전히 매력적인 데다 올해 이월되는 수요까지 고려하면 내년에 자금 부족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김후주 충남 아산 주원농원 대표는 “최근 계약을 맺고도 대출 실행이 안돼 위약을 걱정하는 청년농이 늘었는데,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우려된다”면서 “현장에선 청년농 신규 선발을 늘릴 게 아니라 이미 선정된 이들에 대한 내실 있는 지원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농업계는 국회 심의 단계에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최근 발표한 ‘2025년도 농식품 핵심 정책사업 예산 증액 요구사항’에 ‘후계농육성자금’을 포함했다. 한농연은 “다수의 후계농·청년농이 농업 생산기반 조성을 위한 자금 확보에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우리 농업의 지속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회에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