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의 특별한 설

2025-01-23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 첫 서양의사 알렌(Horace N. Allen )은 자신의 일기에 1885년의 설 명절에 대해 적었다.

2월 10일(화)

오늘 음력 섣달 스무엿새날(12월 26일)인데 사실상 오늘부터 조선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시작된다. 조선인은 설날 명절을 5일 동안 쉰다. 이 5일 동안 서울거리는 온통 잔치로 꾸며진다. 썩은 짚으로 된 거름더미 같은 것은 말끔하게 치워진다. 5일 동안에는 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각종 물건을 물물교환한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무슨 물건이라도 팔고 산다. 그래서 서울거리는 시장 바닥이 되고 만다.

각종 물품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각종 놋그릇(유기-鍮器)더미를 산처럼 쌓아놓은 것인데,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눈부시게 빛난다. 놋그릇 종류에는 촛대, 숟가락, 젓가락, 사발, 대야, 타구(唾具, 침 뱉는 그릇) 등이 있다. 타구는 달걀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양끝이 연결되어 있다. 이들 유기는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고 그 값도 대단히 비싸다. 나는 조그마한 타구 하나의 값이 현금으로 500냥(약 50센트)이라는 말을 들었다. 조선사람은 어떻게 그같이 비싼 값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연료용 나무값도 아주 비싸다. 그래서 하루 한 칸의 방을 덥게 하려면 말 한 마리의 나뭇바리(짐)가 들어간다. 이 나무값은 30센트고 집 한 채 전체를 덥히려면 적어도 난방비가 하루 1달러가 소요된다. 돈이 없는 빈민층은 나무를 훔쳐 때거나, 마른 쇠똥을 때고 있다.

2월 14일(토)

내일은 설날이다. 양반들은 하루 종일 송년 인사하러 다니면서 묵은해의 빚을 갚는다. 우리도 이러한 행사를 피하지 아니했다. 임금 자신은 대궐 밖으로 나가 방문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2명의 고위관리를 파견하여 임금 대신 나에게 감사와 그간의 노고를 위문했다. 내가 민영익을 치료,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나의 아내에게 왕비의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아내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놀랍게도 조선관리는 대단히 예절이 발랐다. 그들은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앉지도 않았고 행동거지가 정중하고 품위가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그들에게 대접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도 예의 바르게 먹었다.

2월 16일(월)

어제는 우리의 일요일이었다. 또한 그것은 조선의 명절 설날이었다. 상가의 모든 가게는 철시상태고, 사람들은 두루마기를 입고 다닌다. 오늘은 너무나 조용하다.

그런데 설날 조금 전 서울 거리의 모습은 지옥도(地獄圖)를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다시 알렌의 일기이다.

1월 30일(금)

오늘 나는 민영익의 집으로 가던 길에 머리와 손발이 절단된 주검 4구를 보았다. 이들 4구의 주검은 최근 갑신정변 직후에 세워놓은 한자로 쓴 나무푯말 밑에 놓여 있었다.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주검 더미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미처 도망하지 못하여 체포되어 처형된 이들이다.

2월 3일(화)

위에서 말한 4구의 주검 말고도 모두 7구의 주검이 남대문에 3일 동안 효시(목을 베어 높이 메담)되고 있었다. 효시가 끝난 뒤 모두 없앴다. 모두 11명이 처형된 것이다. 한 사람이 더 처형될 것이지만 그는 고문 끝에 형무소에서 죽었다. 갑신정변에 가담한 자들의 부인까지 효시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고위관리들이 암금에게 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그 탄원서에는 어머니, 딸, 첩, 몸종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국가 반역자의 모든 처첩은 남편과 같이 처형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배되고 만다. 귀양 가게 되면 그곳 관리들에 의해 노비처럼 사역을 당한다. 노비생활을 면하기 위하여 자살을 하기도 한다.

1884년 말 갑신정변의 실패는 수구 집권층으로 하여금 유혈의 광란극을 벌일 기회를 주었다. 위의 알렌 일기가 그 일단을 말해 준다. 이 지옥도는 옛일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를 일깨우며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12.3계엄이 성공했더라면? 백골단이 다시 부활했더라면? 이번 설날은 얼마나 어두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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