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에 넣는 고수 한 묶음, 매일 마시는 우유,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 다양한 식재료가 농촌 이주노동자 손을 거쳐 도시 소비자에게 온다. 합법적으로 들어와 한국에서 몇년씩 일하는 이들도, 농번기에 와서 5~8개월간 잠깐 일하다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취업비자 없이 몰래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있다.
타국에서 온 농업 노동자들은 어떻게 한국에 왔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전남의 한 농촌 마을(1~2일), 경기 포천 일동면(6일), 충남 논산 연무읍(9일)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한국에 온 힌두교도
2015년 입국한 네팔인 발크리슈나(36)는 포천 일동면 비닐하우스에서 일한다. 예전에는 너른 들판에서 벼가 익었지만, 지금은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상추·대파 따위가 자란다. 최대 소비처인 수도권 시장을 염두에 둔 채소들이다. 다만 겨울에는 난방비가 덜 드는 남쪽에서 재배한 채소가 올라오다 보니, 포천의 비닐하우스들은 잠시 문을 닫거나, 다른 작물을 찾는다.
발크리슈나가 일하는 비닐하우스는 겨울에 고수를 키운다. 마라탕집, 쌀국숫집 등이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었다. 농장주는 비닐하우스 50동에서 농사를 짓는데 일동면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기업형 농장이다. 직원은 5명으로, 모두 이주노동자들이다. 남성은 발크리슈나뿐이고, 여성들은 캄보디아 등지에서 왔다.
발크리슈나는 여름엔 오전 6시부터, 겨울에는 오전 7시부터 일한다. 온갖 채소가 자라는 여름에는 밤늦게까지 작업하지만, 겨울에는 오후 6~7시쯤 일이 끝난다. 쉬는 날은 한 달에 두 번. 여름에는 일이 적은 날을 골라 쉬다 보니 거의 챙기지 못하고, 겨울에는 격주로 토요일마다 쉰다.
하루 8시간,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 노동 따위는 농업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농축산업 노동자 등에 대해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농장주가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시켜도, 휴일을 주지 않아도 항의할 수 없다. 연장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은 꿈도 못 꾼다. 발크리슈나는 2015~2020년까지 월 190만원을 받았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몸값이 껑충 뛰었다. 발크리슈나는 현재 월 280만원을 받는다. 포천 비닐하우스 농장 이주노동자 중에서 그만큼 버는 이는 많지 않단다.
발크리슈나는 아침마다 하우스를 돌며 비닐이 찢어진 곳을 찾아 보수한다. 하우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하고, 약을 뿌린다. 여성 노동자들이 고수를 수확하면 이를 트럭으로 옮긴다. 농장주는 욕은 하지 않지만 화를 자주 낸단다. “채소값이 떨어지면 사장님 기분이 안 좋아요. 많이 혼나요. 근데 요즘은 덜 혼나요. 고수가 한 단에 2만원까지 갔거든요.”
발크리슈나는 지난해 여름이 다른 때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날이 무덥다 보니 하우스 안에 병해충이 득실거려 농약을 평소보다 많이 뿌렸다. “약을 엄청나게 쳐요. 시장에 보면 야채들 예뻐 보이잖아요? 약 많이 친 거예요. 벌레가 먹어서 구멍 뚫린 거 그건 약 많이 안 친 거. 근데 사람들은 깨끗하지 않으면 사질 않아요.” 뜨거운 비닐하우스에 발크리슈나 혼자 들어가 약을 뿌리는데, 농장주는 마스크 한 장 제공하지 않는단다.
쉬는 토요일에는 네팔인 친구 무한(34)과 함께 일동면 버스터미널 부근 시장을 어슬렁대거나, 네팔인이 많은 포천 소흘읍 송우리에 간다. 한국 온 지 7년째인 무한은 발크리슈나가 일하는 비닐하우스 인근 목장에서 젖소 80마리를 돌본다.
무한은 새벽 5시부터 일한다. 그가 축사 문을 열면 젖통이 퉁퉁 부은 소들이 착유장 앞으로 길게 줄을 선다. 무한은 깨끗한 수건으로 젖통을 잘 닦은 뒤 착유기를 끼운다. 제대로 닦지 않으면 우유가 오염되고 소에게도 유방염 등 질병이 생긴단다. 오후 5시 한 번 더 젖을 짜면 하루 일이 끝난다. 그는 월 210만원을 받는다.
무한은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를 믿는다. 한국의 홀스타인 젖소는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는 재래종 소와는 차이가 있지만, 무한은 젖소를 다룰 때조차도 조심스러워한다. “어릴 때는 엄마 젖을 먹고, 커서는 소의 젖을 먹잖아요. 그러니 소를 엄마처럼 대해야 해요.” 농장주는 말을 듣지 않는 소를 발로 차는데, 무한은 그때마다 움찔 놀란다고 했다. 병든 소를 도축장으로 보낼 때는 죄를 지은 것같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도 했다. “잘 치료해주면 살릴 수 있을 텐데…. 사장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아요.” 발크리슈나만이 무한의 심정을 이해한다.
무한의 숙소는 축사 옆에 설치된, 길이 6m·폭 3m 크기의 컨테이너다. 안에는 싱크대와 온수기, 2구 가스레인지, 냉장고와 밥솥이 있다. 낡은 매트리스 2개를 겹쳐 침대로 쓴다. 화장실은 숙소에서 30m 정도 떨어져 있다. 변기 없이 바닥에 구멍만 뚫려 있는 야외 간이 화장실이다.
발크리슈나는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서 산다. 그래도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농장주도 와서 지낼 정도로 시설을 갖췄다. 무한의 숙소를 본 발크리슈나는 “난 이런 집에서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무한이 대꾸했다. “아냐. 방도 따뜻하고 온수도 나와.”
일동면에서는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이 난방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서 지내다가 사망했다. 속헹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컨테이너를 숙소로 제공하는 농장주에게는 이주노동자 신규 고용을 불허하고, 컨테이너에 사는 기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원하면 직권으로 사업장을 변경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부 농장주들이 원룸, 다세대 주택 등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마련했지만, 발크리슈나와 무한처럼 여전히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는 이주노동자들도 상당수다. 무한이 말했다.
“(컨테이너 숙소가) 불법인 거 알아요. 근데 좋은 숙소로 옮기면 사장이 숙소 비용 20만~30만원을 월급에서 빼겠죠. 고향 가면 30만원이 한 달 월급인데, 여기서 사는 게 나아요.” 컨테이너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숙소비를 떼는 농장주도 많단다.
발크리슈나는 “속헹 사망 사건 이후 나아진 것도 있다”고 했다. “내 방에 에어컨이 설치됐어요. 그전에는 사장이 머무는 방에만 에어컨이 있었거든요.”
발크리슈나의 3층집
한국에 오기 전 발크리슈나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살았다. 트리부반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학생이었다. 학비를 벌려고 버스 운전을 하고, 도로를 까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일본에 가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해 그 옆의 한국을 택했다. 학비로 모아놓은 돈에, 오토바이를 팔아서 한 달간 한국어 학원을 다니고,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 기출 문제집을 구해 달달 외웠단다. 시험에 합격해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기 전 발크리슈나는 농축산업, 제조업 등의 업종 중 무엇을 고를지 선택해야 했다. 농축산업은 제조업보다 경쟁률이 낮다. 그만큼 한국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다. 발크리슈나는 농축산업을 선택했다. 시험에 통과한 뒤, 그의 이름이 ‘구직자 명단’에 올랐다. 국내에서 한국인 직원을 구하지 못한 지금 사장이 명단에서 발크리슈나를 선택했다. 그렇게 발크리슈나는 한국 정부로부터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고 입국할 수 있었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사업주가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해주는 이 제도를 ‘고용허가제’라고 한다. 농촌에서는 주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농장이나 목장 등에서 이 제도를 활용한다.
E-9 비자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3년 일한 뒤에 사업주가 허락하면 1년10개월 더 일할 수 있다. 이후 사업주가 재고용을 허락하면, 잠시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성실근로자’로 입국해 최대 4년10개월간 추가로 일한다. 최장 9년8개월 한국 체류가 가능하다. 사장 허락 없이는 다른 농장으로 옮길 수도 없다. 한국에서 오래 일하려면 사장 말을 잘 듣는 수밖에 없다. 발크리슈나는 그렇게 9년4개월을 버텼다.
무한은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300㎞ 떨어진 ‘당(Dang)’이라는 지역의 고등학교 교사였다.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다. 당시 월급은 2만8000네팔루피. 우리 돈 30만원 정도다. 한국에서 일하며 큰돈을 버는 형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를 때 농축산업을 선택했다. 50문제 중 47문제를 맞혔단다.
“그때는 ‘한국에 어떻게 들어가지?’ 그 생각만 하니까 농축산업을 선택했는데 후회했죠. 내가 왜 그랬을까…. 근데 한국에서 공장 다니는 형을 보니까 농축산업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으니까….” 그의 말마따나 공장에서는 끼임 등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농장도 그리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축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분뇨 처리시설에 들어가 일하다가, 혹은 돈사와 붙은 숙소에서 살다가 질식사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발크리슈나는 280만원 중 250만원을 아내에게 보낸다. 카트만두에 땅을 사고, 그 위에 3층 집을 짓고 있다. 1억9000만원이 들어갔다. 집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아직 1000만원 정도 더 모아야 한단다. 무한은 210만원 중 일부는 자기가 쓰고, 50만원만 아내에게 보낸다. 대신 매달 적금을 붓는다. 적금 탄 돈으로는 고향에 땅을 샀다고 했다. 발크리슈나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돈을 벌려면 땅을 사야 해.”
다만 무한은 2023년 가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1년간은 아내에게 돈을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1년치 월급을 못 받았어요. 소들이 유방염에 걸렸거든요. 거기다가 사장님이 땅을 사는데 돈을 많이 써서 월급 줄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무한은 소흘읍의 김달성 목사를 찾아갔다. 그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대표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노동지청에 임금체불을 신고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방송기자와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지청에 신고하겠다고 해도 사업주가 한 달, 두 달 더 끌더라고요. ‘악덕 사업주로 9시 뉴스에 내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그제서야 체불 임금을 주더군요.” 김 목사의 말이다.
발크리슈나는 종종 아내의 페이스북을 살핀다. 아내는 페이스북 게시글 상단에 ‘다사인(Dashain)’ 명절에 아이와 찍은 사진을 올려놨다. 다사인은 매년 가을에 힌두교 여신 ‘두르가’를 기리는 명절로, 어른들에게 절하고 덕담을 듣는다. 자녀에게는 햅쌀과 붉은 염료를 짓이겨 만든 ‘티카(Tika)’를 이마에 발라주며 축복을 해준다. 사진 속에는 티카를 바른 아이가 웃고 있었다. 발크리슈나는 한국에서 일하느라 다사인을 한 번도 챙기지 못했다.
발크리슈나는 E-9 비자가 만료되는 오는 5월 한국을 떠나야 한다. 네팔에 돌아가면 비닐하우스를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네팔에서는 채소를 대부분 노지에서 키운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면 노지 채소보다 빨리 자라고 빨리 거둬들일 수 있어 돈이 될 것 같단다.
올해 다사인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 이번에는 아들 이마에 붉은 티카를 발라주며 축복을 해줘야지 하면서도, 한국에 남아 미등록 노동자로 몇달간 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돈을 더 벌면 3층 집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안의 도시락
태국인 마안(45·가명)은 5년 전 한국에 왔다. 태국인에게 한국은 비자 면제 국가다.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면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마안은 처음부터 관광할 생각은 없었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마안이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내가) 나이가 많아요. E-9 못 받아요. 일해야 해요. 아이가 둘.” 마안과 같은 사례가 늘면서 지금은 공항 입국장에서 태국인에 대한 입국 조사가 강화됐다.
그는 태국 방콕에 있는 장신구 공장에서 월 2만5000바트(약 80만원)를 받으며 일했다고 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전남의 한 농촌 마을로 들어갔다. 한국에 먼저 온 친척 여동생과 그의 태국인 남자친구가 사는 집에서 방 하나를 얻어 산다. 집주인은 마을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인데, 읍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전에 살던 집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싼값에 제공한다.
일은 넘쳐난다. 마을에 태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알음알음 일을 구한다. “양파 캐서 그물 안에 담기, 고추 따기, 마늘 뽑기, 마늘 껍질 벗기기, 풀 뽑기 해요. 힘들지 않아요.” 때론 집주인이 집에 들러 거실에 있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기도 한다.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에는 집주인 논이나 밭으로 가서 쌀 수확을 돕거나, 양파 뽑는 일 따위를 한다. 친척 여동생은 겨울이 되자 옆 마을에 있는 김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공장에서 숙식하면서 김 가공 작업을 한단다.
이 마을과 옆 마을에는 간판을 내건 ‘인력사무소’가 열 곳이 넘는다. 이들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보낸다. 간판 없이 영업하는 곳은 더 많다. 마을 사람들은 간판 없는 인력사무소가 주변에 스무 곳 정도 있다고 했다.
원래 이 마을 농부들은 목포나 광주의 인력사무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구했다. ‘김 기사’ ‘이 기사’ 등의 직함으로 불리는 대도시 인력사무소 소장들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30~40명씩 관리했다. 양파 수확 등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기간에 이들에게 전화를 하면, 35인승 버스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싣고 온다.
10년 전 큰 길가의 주유소가 폐업하고 그 자리에 인력사무소가 생기면서 마을에도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업체가 생겨났다. 마을의 첫 인력사무소는 광주의 ‘김 기사’가 관리하던 태국인 한 명을 고용해,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인 미등록 노동자를 상대로 페이스북 광고를 시작했다. 태국인들이 많이 보는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태국어로 일자리, 숙소, 급여 등이 적힌 홍보글을 게시했다.
그때부터 태국인 노동자들이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일부 주민들도 간판 없는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곳곳에 태국인 노동자들의 숙소가 생겼다. 이 지역 일당은 13만원 정도인데, 양파 수확시기가 되면 일당이 15만원으로 뛴다. 수확철에 갑자기 비가 내린다는 예보까지 들리면, 일당에 1만~2만원이 더 붙는단다. 한 농부는 “인력사무소가 이곳 사정을 너무 잘 알다 보니 사람 많이 필요한 시기에 갑자기 일당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소속된 업체가 없는 마안은 일종의 ‘프리랜서’다. 인력사무소가 중간에 끼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당도 낮다. 농부들에게 마안이 인기 있는 이유다.
마안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초까지 정미소에서 일했다. 수확한 쌀을 도정해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기본급은 월 240만원인데, 매일 야근을 한 10월에는 야근수당이 붙어 총 400만원을 벌었다. E-9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적은 월급을 받으며 혹사당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마안을 고용한 정미소 사장은 “내 돈 다 벌어다 주는데 고작 400만원이 뭐가 아깝겠냐. 월급 적으면 우리집 말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마안은 점심시간에는 자신이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통에는 찹쌀로 지은 밥과 계란 지단 따위가 들어 있다. 손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지단과 함께 먹는다. 식사 장소는 정미소 건물 밖 구석진 곳. 번호판 없는 자신의 빨간 110㏄ 오토바이 옆에서 먹는다. 단속반이 오면 바로 도망가야 한단다. “1~2년만 더 일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진 신고 기간에 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거든….”
체체기의 숙제검사
몽골인 체체기(41)는 충남 논산 연무읍의 딸기농장에서 일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들어와 오는 6월까지 머문다. 농번기에만 일하는 ‘계절근로자(E-8 비자)’ 제도로 입국했다. 논산시와 연무농협은 자매결연을 맺은 몽골의 날라이흐구(區)에서 계절근로자 40명을 데려온다. 논산 딸기를 수확할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직접 선발하고 관리하는 E-9 노동자와 달리, E-8 노동자는 지자체가 데려오고 지역농협이 채용하기 때문에 중간에 브로커가 끼어 노동자들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연무농협은 조합장과 직원들이 직접 날라이흐구에 가서 계절근로자 후보 면접을 벌인다.
매년 200명 이상의 몽골인들이 지원한다. 논산 딸기농장에서 일하려고 날라이흐구에 위장전입을 하는 몽골인이 있을 정도란다. 연무농협은 40명 중 절반은 전년도에 선발돼 좋은 평가를 받았던 노동자를 재선발하고, 나머지 절반은 신규 노동자로 뽑는다. 체체기는 2023년 3월 연무농협의 첫 계절근로자 모집 때 뽑혔는데, 그해 11월에 이어 이번까지 3차례 연속 재선발됐다.
체체기와 함께 온 몽골인들은 연무농협이 마련한 읍내 펜션에서 살고 있다. 평일 아침 6시40분에 연무농협 농산물유통센터 앞으로 출근해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자신들을 데리러 온 농부의 트럭을 타고 각자 일터로 이동한다. 딸기 농부들이 연무농협에 일할 날짜와 필요한 인원수를 사전에 요청하면, 농협이 각 농가에 몽골인 노동자를 배정하는 식이다.
체체기는 2년 전 연무읍 농부 김대영씨(72)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김씨는 아내와 1800평(0.53㏊) 논에 세운 비닐하우스 6동에서 딸기를 키운다. 체체기가 세 차례 연속해서 선발된 건 김씨 부부가 연무농협에 “올해도 꼭 체체기를 데려와야 한다”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체체기가 성실하게 일을 잘한다”며 “농장 문 닫을 때까지 그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체체기는 이른 아침에는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하우스 여섯 동을 돌며 알이 굵어진 딸기를 딴다. 오후에는 딸기꽃과 줄기 따위를 잘라낸다. 딸기는 한 줄기에서 10개 이상의 꽃이 피는데, 7~8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따내야 한다. 그래야 양분이 7~8개 꽃에 집중되면서 알이 굵은 딸기로 자란다.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이지만, 손이 빠른 체체기는 1~2시간 일찍 일을 끝내고 퇴근한다. 김씨는 농협에 체체기 일당 9만원을 지불하고, 체체기는 연무농협으로부터 월 210만원을 받는다.
김씨는 예전에는 딸기 수확철마다 인력사무소에 전화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꾼으로 부렸다. 이들의 일당은 13만~15만원 수준이었는데, 농협이 몽골에서 노동자를 데려오면서 인력사무소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당이 10만원 전후로 떨어졌단다. 연무농협 사례를 보고 논산의 다른 농협들도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부터 논산농협과 계룡농협도 몽골 날라이흐구에서 계절근로자를 각각 20명씩 선발해 데려온다.
딸기 농가는 몽골인 노동자에게 점심을 직접 제공하거나, 점심값으로 1만원을 준다. 몽골인 노동자들은 자신이 직접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오고, 농장주로부터 점심값 1만원을 받는 걸 선호한다. 체체기는 ‘뿌타테 호르크(소고기 볶음밥)’ 같은 몽골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간다. 소고기 다진 거에 파를 썰어 넣고 밥과 함께 볶아 만든다.
김씨 부부는 볶음밥만 먹는 체체기가 “목 맥힐까봐” 사리곰탕 컵라면 한 박스를 샀다. 처음엔 진라면 순한맛 한 박스를 구입했는데, 그에게는 순한맛 라면조차 너무 매웠단다.
체체기는 몽골에서 미용사로 일했다. 몽골에서는 미용사가 미용실에 고용되는 게 아니라, 미용실에 있는 좌석 하나를 ‘월세’로 빌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 손님을 받는 방식이란다. 몽골 미용실 좌석 하나에서 한 달에 80만투그릭(약 33만6000원)을 버는데, 월세 20만투그릭(약 8만4000원)을 지불하면 60만투그릭(약 25만2000원)만 남았다. 그런 미용실도 2020년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체체기는 이후 일반 승용차로 택시 영업을 하다가, 연무농협의 계절근로자가 됐다. 체체기는 한국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빚을 다 갚았다. 한국에서 받은 월급은 몽땅 몽골로 보내고, 정작 자신은 점심값으로 받는 1만원을 아껴 생활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날 먹을 도시락을 싼다. 몽골의 가족과는 영상통화를 한다. 체체기는 스무 살, 열다섯 살, 열두 살 자녀를 뒀다.
체체기는 영상통화로 막내의 학교 숙제를 돕는다. “학교 수업이 어려운데 한국처럼 학원이 잘 안돼 있거든요. 부모가 알려줘야 해요.” 체체기의 몽골말을 연무농협 통역사인 몽골인 진주가 한국말로 바꿔 전했다.
막내가 오는 8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데, 성취도 시험에서 탈락하면 중학교에 올라가지 못한단다. 자녀의 학교 숙제를 봐주는 건 체체기만이 아니다. 체체기와 같은 방에 머무는 다른 여성들도 저녁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초등생 자녀의 숙제를 봐준단다.
다음에도 계절근로자로 들어오겠냐는 질문에 체체기가 몽골말로 답했다. 통역사 진주가 한국말로 풀었다. “물론이죠. 여기 일은 제게 소중해요. 농협도 농가도 항상 우리를 신경 써주고요. 스무 살 되면 논산 계절근로자에 지원할 수 있거든요. 우리 첫째에게도 꼭 지원하라고 할 거예요.”
<5회 끝>
남태령을 넘어 시리즈(총 8회) 바로가기
[남태령을 넘어 ①회 1] 농부가 농촌을 떠난다 https://naver.me/G58bGSV5
[남태령을 넘어 ①회 2] “농사짓겠다고 남은 젊은 애들이 걱정이야” https://naver.me/GvcYBnFf
[남태령을 넘어 ①회 3] “그 많은 샤인머스캣이 설에 쏟아져 나오면 어쩌지?” https://naver.me/FioIY8DB
[남태령을 넘어 ①회 4] “마늘은 기계로 못 심어...몸 힘드니 다들 시금치로 갈아타” https://naver.me/xMjDTTXA
[남태령을 넘어 ①회 5] “한 달 사룟값만 1억···‘대기업 종살이’ 할라” https://naver.me/IgJZ7j
[남태령을 넘어 ②회] 사라질까 살아갈까,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 https://naver.me/xWTqxNNj
[남태령을 넘어 ③회] ‘금값’과 ‘헐값’ 사이···농부는 밭에서 손을 뗀다 https://naver.me/FO97cHNM
[남태령을 넘어 ④회] 시들어버린 제주의 ‘푸른 겨울’···“온몸으로 맞서도 이젠 한계” https://naver.me/GV2pKH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