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기의 문화기행] 화산이립 (華山而立) 화산(華山)을 가다

2025-08-29

중국 산서성 서부, 시안에서 서쪽으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수직의 암벽이 평원을 가르며 솟구치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바로, 서악(西岳) 화산(華山)이다. 화려할(華), 그리고 서다( 立) “화산이립(華山而立)”이라 부르는 이유를 그제야 알겠다.

산은 결코 높지 않다. 최고 해발 2160m. 그러나 위엄은 웬만한 고산을 능가한다. 거대한 화강암이 다섯 갈래 봉우리를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한 수직 절벽과 구불구불한 산길은 마치 한 송이 연꽃처럼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

중국 5악 중 하나로 꼽히는 화산은 단순한 명산이 아니다. 오행사상에 기초한 오악신앙의 서쪽 산, 곧 ‘서악’으로 숭배되어온 도교의 영산이자 수많은 무협소설과 영화의 무대가 되어온 상상의 산이기도 하다.

태산은 제왕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자리였다면, 화산은 검객이 칼끝으로 정의를 논하던 전설의 무대다. 이곳엔 아직도 곳곳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화산논검 華山論劍”-검을 논하는 자, 이곳으로 오라.

나는 북봉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화산에 올랐다. 멀리서 보았을 땐 꽃처럼 수려했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서니 암벽은 너무도 험준했다. 그 위에 바람을 거스르며 선 구부러진 소나무, 수직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의 절벽, 그리고 그 위를 걷는 수많은 사람의 조심스런 발걸음.

특히 남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장공잔도(長空棧道)는 진정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험이었다. 수직 절벽 1600m 높이에 바위를 파고 만든 좁은 길.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을 견디며 걷는 순간, 인생도 이처럼 벼랑 끝을 지나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이 산엔 신화도 많고, 이름에 얽힌 전설도 많다. 옛사람들은 이 산의 봉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고 꽃과 같다고 하여 “화(꽃)”산이라 불렀고, 이윽고 문화의 華로 바뀌어 지금의 ‘화산(華山)’이 되었다.

이곳을 오르며 나는 무협지 속 도인들을 떠올렸다. 구름을 타고 오가며 검을 겨루던 이들이 바로 이 바위 위, 소나무 곁, 안개 낀 협곡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어쩌면 그들은 나의 상상 속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목’에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황산도 가봤고, 태산도, 형산도, 항산도, 숭산도 다 가봤다. 하지만 그중에 화산과 황산은 차원이 달랐다. 하나는 절경의 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의 정수였다.

화산을 오르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산은 그저 풍경이 아니다. 산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내 안의 두려움과 맞서는 전장이며, 또한 다시 출발할 용기를 얻는 마루금이다.

오늘, 나는 화산 위에 섰다. 이립지년(而立之年)이 한참 지난 지금, 화산이립 華山而立. 나는 화산처럼 다시 서보려 한다.

권오기 여행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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