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복근
가출한 젊은 사내 주먹을 쥐고 살았다. 가진 게 없어 펴면 죽는다는 오기로 살았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낙동강에 뛰어들기도 했다.
불같은 성정이라 걸어서 마산까지 허기진 배를 잡고 댕가지장 뜻을 세워 서간도 돌아다니며 장쾌한 꿈을 키웠다.
나라 잃은 아픔에 오로지 배움의 열정 낯설고 물선 나라 이십여 년 걸렸다. 식민지 경제학 박사 눈물로 일구었다.
우리 얼 우리 말글 끊임없이 갈고닦아 조선어 수난 사건 모진 고문 이겨냈다. 영어의 몸이 되어서도 굽히잖는 민족자존
나라가 나뉘어지는 뼈아픈 고통 속에 말모이 겨레 사전 기어코 펴내었다. 이 땅의 들풀을 위해 밤하늘 별이 되었다.
☞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 영화 ‘말모이’에서 배우 윤계상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다. 의령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배움의 열정 때문에 가출해 마산 창신학교에 입학했고, 1912년 독립군이 되고자 서간도로 갔다.
2연에 나오는 ‘댕가지장’은 평안북도의 방언인데, 식당에서 고추장을 달라고 해도 주인이 알아듣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댕가지장 말씀이오?”하면서 고추장을 내왔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극로는 일제 치하에서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표준어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1920년 상하이로 유학해 예과를 졸업한 후, 베를린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을 우려해 1928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우리말 구술 녹음본을 남겼다. 머나먼 이국에서 닿소리와 홀소리를 설명하는 100년 전 경상도 사내의 생생한 음성을 듣고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6년 형을 받고 복역하다 광복으로 출옥한 후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다.
이극로의 고향인 의령에서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말을 가려 쓰고 닦아 쓰는 글쟁이의 한 사람으로 우리말의 보고를 담은 국어사전박물관이 꼭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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