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으로 정책동력 상실
수수료율 구체적 기준 못정해
상설기구 출범도 오리무중
배달기사도 반발 혼란 가중
배달 수수료를 두고 소상공인들과 배달 플랫폼 업체가 정면충돌했다가 어렵사리 상생협의체에서 상생안을 마련했으나 국정이 혼란해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탄핵 국면에 정부 정책이 동력을 잃으면서 4개월 진통 끝에 마련한 상생안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25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업계에 따르면 내년 초 시행을 목표로 하는 상생안은 구체적인 배달수수료율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앞서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12차례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거래액 기준 4개 구간을 나눠 입점 업체별 중개수수료와 배달비를 차등화하는 상생안을 내놨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에게 관건인 거래액 기준 시점을 작년 혹은 지난달 등 어떻게 할지와 관련해 정부와 배달 플랫폼 업체는 40여 일째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계엄과 탄핵 사태가 겹치면서 정부에서 상생안 시행 계획이 디테일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며 “수수료율 기준 등 실무적인 부분을 조율하고 시행 시점을 정해야 하는데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라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 업체들은 공정위 측에 각각 상생안 이행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구체적 시행 계획은 빠진 채 대략적인 내용만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체가 “추후 지속적인 논의를 위해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던 관련 상설기구 출범 또한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 않았다. 입점 업체 단체들로부터 ‘반쪽 상생안’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마련됐던 조치들조차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생안이 방향을 잃은 가운데 협의체에 참가하지 못했던 배달기사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등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상생안에서 결정된 배달기사 동선 공유와 관련해 최근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라이더가 체감하는 업무 압박 증가와 개인정보 데이터 남용 우려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상생안을 결정했던 배달 플랫폼 3사는 노조 측 의견을 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정부 주도 상생안이 ‘조삼모사’라고 꾸준히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자체 협의체를 출범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19일 “배달 플랫폼 수수료 부담 완화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상생안에 반대했던 소상공인단체 요구를 쿠팡이츠에 전달했다. 이에 쿠팡이츠도 논의에 함께하겠다며 수수료 부담 완화와 배달앱 거래 관행 개선 등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협의체에서 함께했던 쿠팡이츠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가 야당과의 대화에 발을 들이면서 상생안의 위상과 실효성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애초에 협의체가 상생안이라는 성과물을 내놓기 위해 무리하게 결과를 냈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협의체에 참여한 4개 소상공인 단체 중 2개 단체가 상생안 실속이 없다고 반대하며 퇴장했음에도 서둘러 결과물을 만들면서 실제 수수료 인하 효과 등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협의체 활동 종료 직후 이달 초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상생협의체 배달수수료 상생안을 관련 성과로 제시한 바 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상생안의 수수료 인하 수준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관해 잘 알고 있다”면서도 “상생안이 원활히 이행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생안 후속 조치와 관련해 여전히 배달 플랫폼 업체들과 협의 중에 있다”며 “상생안이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시행될 수 있도록 업체들을 계속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