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인터넷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서비스가 검색이다. 네이버는 한국 이용자들이 디지털 지식과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며 국가대표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9년 애플이 스마트폰을 내놓자 정보·서비스 접근의 시공간 제약도 크게 줄었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진 모바일 시대를 상징하는 국내 서비스가 바로 카카오톡이다.
인공지능(AI)은 지식과 정보의 흐름 자체를 바꾼다. 과거에는 우리가 정보를 찾아다녔다면 이제는 AI가 지식을 내 앞으로 가져온다. 이런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구현한 서비스가 챗봇이다. 메일 전송, 예약, 결제 등을 한 번에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도 대표적이다. 아직 초반전이라 앞으로 나올 AI 서비스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세계는 AI가 경제 생산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모바일 시대 주요 무료 서비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생산성 저하 요인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주류 경제 매체도 “SNS 영향으로 제조업에서 일하려는 이들이 줄고 있다”고 보도한다. 젊은 세대가 공장보다 인스타그래머나 바리스타를 꿈꾸고, 기업은 이들을 채용하려 직원용 요가 클래스를 여는 등 고용 비용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판의 정수는 ‘숏폼’이다. 알고리즘이 끝없이 이어주는 숏폼으로 인해 인지력·집중력·인내심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팝콘 브레인’, ‘브레인 롯(brain rot)’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기업이 이런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한다는 뜻의 ‘중독 경제(addictive economy)’라는 말도 나왔다. AI가 근로자의 업무 시간을 줄이고 업무 처리량을 늘려준다면 모바일 시대 주요 서비스의 부작용을 상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와 달리 AI 전환기 인터넷 기업들은 오히려 숏폼을 확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숏폼을 사진보다 위에 배치하고 오픈AI는 AI로 숏폼 영상을 만드는 ‘소라2’를 내놨다. 업계에서부터 “무한 AI 틱톡 대신 과학을 가속화하는 AI를 만들자”는 반발이 나온다. AI가 의학을 혁신하고 안보를 강화하며 제조업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 믿었지만 이런 기대가 가시화하기도 전에 중독성 콘텐츠의 생산과 알고리즘 고도화부터 시작되는 데 대한 반응이다.
이 지점은 한국 인터넷 기업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체류 시간을 늘려 광고 수익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용자들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최근 카카오톡 개편에 대한 소비자들의 냉담한 반응은 모바일 서비스의 정점이 결국 피드형 SNS와 숏폼이라는 사실에 대한 실망을 보여준다. 이용자들은 그런 서비스는 이미 충분하다고 봤다.
우리는 한국어 검색엔진과 메신저를 가진 나라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기술 혁명의 본질을 꿰뚫고 한국 현실에 맞는 서비스를 신속히 내놓은 결과다. AI 시대 우리 플랫폼 기업은 AI로 숏폼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것 외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이 소버린 AI의 가능성을 가르는 열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