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닫아/ 날아가는 새의 머리를 베어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이미지다. 단호한 태도와 달려가는 상상만으로 새를 상하게 한 뒤 화자는 고백한다. “정차한 별들을 훔쳐보는/ 나는 싸구려였다” 스스로를 귀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 헤매는 별일 뿐이다.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인다. 눈썹 끝에 모이는 기차들, 이불 아래로 모여드는 구름, 장마 무렵 하수구에서 튀어 오르는 쥐들, 웃자라는 나무들이 첩첩, 시의 문장으로 쌓인다.
“가슴 위로 코끼리가 발 하나를” 얹는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인은 제목을 ‘이미지 게임’이라고 칭하고 독자를 안심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미지이고 게임일 뿐이라며, 독자들을 다독이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실패다. 첫 연부터 나는 크게 상처받았다. 좋은 시는 언제나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밀치고 할퀴어 놓는다. 이때의 상처는 ‘사랑 때문에 느끼는 고통’처럼 달콤한 구석이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고 싶을지 모르겠다. 시인들은 왜 범상하게(혹은 편안하게) 말하지 않고, 때론 엉뚱하게 때론 어렵게 때론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겁니까? 글쎄, 나라면 이렇게 답하겠다. “창문을 닫으며 생각을 단호히 정리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창문을 닫아 날아가는 새의 머리를 베어냈다고 하는 게 더 진짜 같지 않나요?” 시에서 이미지는 게임처럼 작동할 수도 있지만, 이때 게임은 죽고 사는 문제처럼 진짜다. 진짜!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