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저한세 합의해놓고 트럼프 일방 폐기
도리어 ‘구글세’ 부과하면 ‘보복 과세’ 명문화
한국은 2027년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 앞두고 차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에 이어 ‘글로벌 세금 전쟁’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미국 하원은 글로벌 최저한세,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한 국가의 기업이나 개인에게 최대 20%의 ‘불공정 외국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7년 본격적인 글로벌 최저한세 과세를 준비 중인 한국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향후 한·미 관세 협의에서 미국 측이 ‘구글세’를 비롯한 글로벌 최저한세 유예 등을 협상 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공화당 주도로 미 하원을 통과한 세법개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 제899조는 미국 정부가 ‘차별적인 외국’에 속한 기업과 개인에 대한 소득세를 최대 20%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법안은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최저한세와 디지털서비스세를 도입한 국가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과세’가 가능하도록 했다. 미 상원까지 통과하면 2022년 글로벌 최저한세 입법을 마치고 2027년 3월 본격적인 과세를 앞둔 한국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란 특정 국가가 다국적 기업에 최저한세율(15%)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하면 다른 국가들에 추가 과세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미국이 문제 삼은 것은 이 중 최종 모기업이 소재한 국가의 실효세율이 15% 미만인 경우 등에 적용하는 소득산입보완규칙이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애플 미국 본사에 세율을 12%만 매겼다면, 애플의 자회사가 소재한 다른 국가들이 그 차액인 3% 범위 안에서 과세권을 각 자회사의 고용인 수 등에 비례해 나눠 갖는다. 즉 애플 본사는 그동안 내지 않았던 3%만큼의 세금을 애플코리아 등 해외 자회사가 소재한 국가들에 나눠 내야 한다. 미국 기업 입장에선 불리한 제도였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을 포함한 138개국이 2021년 도입에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구글세’라고도 불리는 디지털서비스세는 다국적 디지털 기업의 사업장이 없더라도 특정 국가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세금을 그 나라에 내도록 한 제도다. EU 집행위원회는 전통적인 제조업의 평균 실효세율이 23.2%이지만, 서버를 조세회피처에 둔 다국적 디지털 기업의 평균 실효세율은 9.5%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은 구글 등이 자국에서 거둔 수익의 2~3%를 디지털서비스세로 거둔다.
이번에 통과된 미국의 법안은 두 세제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보복성 세금을 매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애플코리아, 구글코리아에 글로벌 최저한세를 매기면, 미국도 한국 공공기관, 기업, 개인에게 최대 20%까지 배당소득세, 이자소득세 등 보복 과세를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주식에 투자한 국민연금 연기금, 한국 기업, 개인 투자자 등이 미국에 배당소득세를 낼 때 최대 20%까지 추가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당장 국내 기업들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에서 발을 빼고 ‘보복과세’까지 추진하자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에서는 미국에서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해 최근 기재부에 제도 시행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향후 미국과 EU 간 협상, 한·미 관세 협의에서 이 부분도 테이블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50%’ 부과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EU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EU는 이미 세수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디지털서비스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강하게 보복과세를 추진할 경우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시기가 OECD나 주요20개국(G20) 등 다자회의 틀 안에서 유예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기획재정부는 일단 예정대로 2027년 과세를 준비하되 국제사회와 함께 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글로벌 최저한세 과세권에서 한국만 빠진다고 해도 다른 나라가 과세권을 가져가기에 한국만 과세권을 잃게 된다”며 “이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다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