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성년자인 A 씨는 어머니 B 씨로부터 금융기관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서울 소재 고가의 아파트를 취득했다. 국세청은 A 씨가 갚아야 할 채무와 이자를 B 씨가 대신 상환한 사실을 적발한 뒤 증여세 수억 원을 추징했다.
최근 자녀에게 부동산과 채무를 함께 넘긴 뒤 부모가 대신 원리금을 갚는 이른바 ‘편법 증여’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무 당국이 이를 차단하려면 막대한 행정력이 소요되는 데다 근절에도 한계가 있어 상속·증여세 완화 등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증여 재산가액은 총 73조 2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채무액은 5조 2000억 원(7.1%)에 달했다. 상속·증여 재산가액 중 채무액 비중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2021년 7.7%를 기록한 뒤 2022년 4.8%로 줄었다가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같은 흐름은 자산 승계 과정에서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부담부증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부담부증여는 부동산 등 자산을 자녀에게 넘기되, 전세보증금이나 대출 등 채무를 함께 이전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이전된 채무는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이른바 ‘세테크(세금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절세를 넘어 편법 증여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녀에게 전세를 낀 부동산을 증여한 뒤, 자녀 대신 원리금을 상환하는 ‘꼼수 승계’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5년(2020~2024년)간 부채 사후관리 점검을 벌인 결과 부정 사례에 따른 추징금만 823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인력 한계로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편법 증여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9·7 공급 대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개를 들면서 세 부담을 느낀 가구를 중심으로 부담부증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력이 없는 미성년자 자녀에게 부동산을 넘겼을 경우 부모가 대신 원리금을 변제하는 위법 사례도 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 전문인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만큼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담부증여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부모가 원리금을 대신 갚거나 자녀에게 생활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편법이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세 회피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영국처럼 채무 인정에 대한 입증 책임을 납세자에게 부과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이는 번거로운 절차가 수반되는 만큼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다는 반론도 있다.
이 때문에 탈법을 유도하는 원인으로 지목된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개선책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배우자에 대한 자산 이전에 세금을 물리고 자녀 이전 때 다시 과세하는 이중과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변호사는 “현행 상속세의 이중과세 구조를 개선해 세 부담을 낮추면서 탈세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벌하는 형태로 가는 편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국민의힘이 앞서 부부간 상속분을 한도 없이 전액 공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당론 발의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달 회견에서 배우자 상속세 공제 한도를 현재 1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상속·증여재산에서 부채가 공제된다는 점을 악용한 조세 회피 행위는 성실납세자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이 편법 증여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적·행정적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20%를 반영하면 사실상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제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춰 낡은 상속세 구조를 ‘유산취득세’로 바꾸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이득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