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란 권력자나 특정 개인, 집단이 공공의 이익을 해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밀리에 행동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설명이나 과학적 증거를 거부하고, 대신 의도적인 은폐와 음모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9·11 테러 자작극’ ‘백신 부작용 은폐’ 등이 있다. 최근 한국사회를 보면, 음모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신종 음모론자 윤석열의 폐해이다.
내가 윤석열을 신종 음모론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퍼뜨리는 ‘부정선거론’이 새로워서가 아니다. 이는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과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이 음모론이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이를 근거로 헌정질서를 훼손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도 파괴적 음모론자가 있었지만, 대통령이 음모론에 취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례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그의 폐해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우선, 그는 음모론이 잘 퍼지는 특정 집단을 의도적으로 선동하여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는 마치 분노의 굿판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다. 경제학적으로 음모론의 유행은 행동의 편익이 비용보다 높다는 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음모론을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는 이유는, 그 행동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심리적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부 노년층과 극단적인 집단이 음모론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한국 노년층의 사회적 소외감은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독일, 미국, 일본에서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5~12%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20%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고립은 음모론이 퍼질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2000년대 이후 여야 지지자 간 성향 차이가 점차 확대되면서 한국은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치 양극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념적 분열은 음모론을 통해 적대감을 표현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이런 집단은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한다. 근데 자기가 굿판을 벌이고 그사이 본인은 판사 앞에 가서 모든 책임을 아래로 떠밀고 있다.
둘째, 그는 레거시 미디어를 보지 말고 부정선거론을 유포하는 유튜브를 보라고 말했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부족한 정치 유튜버들에게 슈퍼챗이라는 먹잇감만 던져준 꼴이다. 안 그래도 한국 정치 유튜버는 심각한 음모론 유포에 거리낌이 없었다. 음모론으로 돈만 벌고, 음모론자로서 비용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허위정보 유포로 법적 책임을 지고, 플랫폼 규제로 인해 계정이 정지되어야 하는데 인상적인 사례가 없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음모론 유포자들이 막대한 대가를 치른 사례가 있다. 알렉스 존스라는 음모론자는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참사를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한 뒤, 2022년 코네티컷주 법원으로부터 약 9억6500만달러의 명예훼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또한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에서 계정이 차단되며 그의 미디어 회사는 파산에 이르렀다. 미국 폭스뉴스도 2020년 미국 대선 부정선거 의혹 보도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7억8750만달러를 배상했고, 현재 27억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 중이다.
셋째, 그는 음모론을 공적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공인들에게 ‘부끄러움’이라는 심리적 비용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음모론이 넘지 말아야 할 암묵적 마지노선이 존재했다. 키보드 워리어들로 시작된 음모론이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한 유튜버 정도까지는 확산되었지만, 대통령, 장관, 정치인들이 이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일은 자제되었다. 공인들은 음모론을 절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이라는 대통령이 이러한 규범을 무너뜨렸다. 특히 체포, 구속된 상황에서 음모론에 불을 지피는 모습은 극도로 이기적인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음모론의 편익을 낮추고 비용을 높이는 다양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음모론이 새로운 현상이 아닌 만큼, 해결책은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그러나 당분간은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신종 음모론자 윤석열이 정치를 분노의 굿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법리적 판단에 집중하고 음모론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팩트를 중시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신종 음모론자 윤석열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