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아닌 ‘영어유치원’

2025-11-06

유아 대상 영어 사교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당국이 단골로 내놓는 정책이 있다. ‘영어유치원’ 사용 금지령이다. 유아 영어학원이 유치원 명칭을 사용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설 폐쇄까지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교육부는 유아교육 정보가 유통되는 온라인 카페와 언론 등에도 영어유치원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정정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유치원은 공교육 기관이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학교가 아닌 기관에 유치원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영어유치원이라는 단어는 사교육인 영어학원이 공교육처럼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다. 서울 대치동 입시학원 이름에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인간의 사고와 현실 인식을 형성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어유치원은 이미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굳어졌다. 언중(言衆)에게는 유아 영어학원이라는 정부 공식 명칭이 오히려 어색하고 번거롭다.

지난 9월 교육부는 전국의 유아 영어학원을 전수조사해 유치원 명칭 부당 사용 등 위반 사항 384건을 적발하고, ‘4세 고시’ 등을 실시한 학원엔 과태료를 부과했다. 최근 경향신문 기자들이 서울·경기·충남의 7개 유아 영어학원 입학설명회를 다녀왔다. 교육부의 강력한 단속 때문인지 학원 간판이나 공식 홍보물에서 ‘영어유치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는 ‘영유’(영어유치원의 축약형)나 ‘킨더가튼’(Kindergarten·유치원의 외국어 표현)으로 채워졌다. 4세 고시도 외견상 사라졌지만 한글도 떼지 못한 유아들에게 과도한 교육과정은 여전했다. 연간 영어 사용이 1500시간에 이른다고 소개한 학원이 있고, 50㎞를 운전해 자녀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가 있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이는 교육부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영어유치원 용어 문제는 지엽적이다. 교육부가 유아 영어 사교육 팽창의 책임을 학부모와 학원에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영어유치원이라는 단어를 없애야 한다면 유치원 명칭 자체를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일제 잔재 청산 및 유아 공교육 체제 확립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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