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 전문가 진단

“40년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27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남성현 전 산림청장(국민대 석좌교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장, 남부지방산림청장을 거쳐 산림청장을 지낸 남 전 청장은 한국의 대표적 산림 관리 전문가다. 그런 그도 이번 경북 지역을 덮친 산불은 ‘전대미문의 사태’라고 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산불은 산만 타는 게 아니라 도시, 마을이 타고 국가적 재난”이라며 “국방 태세를 늘 갖추는 것처럼 유비무환의 산불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도(林道) 확충을 강조했다. 2022년 경북 울진 금강송면 화재 때도 2021년 임도를 설치한 덕에 진화·소방 차량이 계속해서 오다니며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9박 10일간 탔어도 8만 그루의 소나무는 그대로 보존됐다”고 말했다.

진화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는 2000년 강원도 산불보다 더 힘들다.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강풍이다. 2000년 당시엔 불길 확산 속도가 시간당 4.4㎞였는데 이번엔 8.2㎞다. 역대 산불 중 가장 빨랐다. 둘째는 풍향이다. ‘도깨비불’처럼 시시각각 바뀐다. 40년 경력에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셋째는 면적이다. 20년 전과 비교해 임목 면적이 3배 남짓 늘면서 화마를 키운 점도 있다.”
지역적 차이도 있나.
“경상도는 사유림이 많다. 국유림이면 계획적 관리가 가능한데 사유림은 국가 차원의 관리가 어려워 산불 대비가 충분치 않다. 우리나라의 사유림 비율은 66%로, 국유림이 50% 이상인 임업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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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진압이 왜 어려웠나.
“강풍이 초속 27m로 불면서 불길을 잡을 틈 없이 번졌다. 화재가 장기화하면서 연무가 올라오고 구름 낀 흐린 날이다보니 27일엔 주한미군 지원 헬기도 철수했다. 진화 자원이 더 있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 산불진화차(1톤)보다 물탱크 용량이 3배인 특수산불전용진화차가 확충되어야 한다. 대당 8억원인데, 현재 29대다. 100대는 있어야 한다.”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숲이 불길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산림 면적의 4분의 1이 소나무(16억 그루)다. 그중 직접 심은 나무는 6%에 불과하다. 94%는 솔씨가 날리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장했다. 애초에 소나무가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솎아내기와 소나무재선충병 관리를 소홀히 한 탓도 있다. 전염성이 강한 재선충병 감염목들은 보통 1m 크기로 조각내 살충제 처리 후 6개월간 밀봉해두는 훈증 처리를 한다. 그런데 훈증 더미를 방치하면 문제가 된다. 이번 산불이 난 경북 지역은 재선충병이 가장 심한 곳이다보니 훈증 더미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 필요한 대책은 뭔가.
“산불은 대형헬기를 동원한 공중진압과 동시에 지상진압이 이뤄져야 한다. 지상 진압을 위한 임도 확충은 필수다. 대형헬기는 큰불만 잡는다. 가장 중요한 건 뒷불 정리다. 보통 주불이 잡혀도 뒷불 처리가 안 되면 불길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낙엽이 평균 40㎝, 최대 2m가 쌓일 정도여서 더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임도가 있으면 헬기가 물을 뿌린 후 진화차량이 계속 물을 뿌리며 잔불 끄기를 할 수 있다.”
그는 산림청장 재직 당시인 2023년 3월 하동·합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때의 경험을 공유했다. “같은 경남이라도 진화율은 임도 유무에서 갈렸다. 합천은 마침 임도 설치가 완공돼 있어 헬기로 1차 진압 후 임도를 통해 진화차량, 전문진화인력이 투입되면서 82%의 진화율을 보였다. 반면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엔 임도가 없다 보니 차량 진입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탐방로로 진화대원을 투입했다. 보통 대원들은 물이 채워진 15㎏ 정도의 등짐펌프를 메고 가는데, 당시 대원 중 1명이 숨이 찬 나머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임도 유무에 따라 진화율은 5배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 임도는 산림 1㏊를 기준으로 독일(54m)·일본(23.5m) 등에 비해 크게 적은 4m에 불과하다.
“미국·일본 등 임업선진국이 임도 설치를 시작한 건 산림경영·관리 차원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이상기후로 산불이 대형화·일상화하면서 신속한 대처 측면에서도 임도는 필수불가결해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도 밀도 비율은 타국 대비 낮은 편이다.”
일부 야당과 환경단체에선 산림훼손을 우려한다.
“임도 설치로 인한 환경훼손과 대형산불 조기 진압 실패로 인한 훼손을 비교해보자. 더욱이 대형산불은 이번처럼 강풍 등 통제 불가 변수가 많다. 단순히 산림훼손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발생량과 손해규모 등 경제적 공익가치 등을 비교하면 후자의 손실이 훨씬 크다. 애초에 임도 설치를 금하는 게 아니라, 재해안전성, 환경성, 타당성을 담보한 임도 설치를 고민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