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31일 타결됐다. 미국이 애초 예고한 상호관세율 25%를 15%로 낮췄고, 자동차 품목별 관세도 15%로 결정됐다. 반대급부로 한국은 3500억달러(약 485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에, 나머지 2000억달러는 반도체·2차전지·원전·바이오 산업 등에 투입된다. 그와 별도로 한국은 1000억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 등을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이날 협상 타결로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 무엇보다 쌀·쇠고기 시장 개방을 막아 ‘식량주권’을 지켜낸 것은 성과다. 미국은 반도체·의약품 등 관세에서도 한국에 최혜국 지위를 보장했다. 관세 부과 개시일인 8월1일 전에 타결한 것도 다행이다. 12·3 불법계엄으로 국정 공백이 길어져 한국은 미국과 협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경쟁 상대인 일본·EU 등이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뒤라 시간을 끌수록 한국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컸다.
일본은 미국에 5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한국과 같은 15% 관세율을 보장받았다. 한국은 일본보다 경제 규모는 작지만 대미 무역 흑자 수준은 비슷하다. 종합 평가를 하기는 이르지만, 미·일 협상 결과와 비교하면 선방했다고 할 만하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이하 정부 협상팀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의 역할도 컸다.
그러나 15% 관세는 기본적으로 경제에 큰 부담이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지금까지 대미 수출은 무관세로 이뤄졌다. 특히 자동차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동안 일본 차는 2.5% 관세를 부담했지만 이제 15%로 관세율이 같아졌다. 영국 자동차 관세율은 연 10만대까지 10%로 한국보다 낮다. 한국산 철강·구리·알루미늄 관세율 50%는 그대로 유지된다.
3500억달러 투자도 ‘생돈’이 나가는 것이다. 국내 일자리 부족으로 제조업 분야 투자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인데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투자 수익 배분도 더 조율해야 한다. 미국은 대일 협상 때와 같이 90%가 자기들 몫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재투자 개념’으로 이해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큰 틀에서 관세 협상은 타결됐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향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식 발표할 때까지 어떤 변수가 더 튀어나올지 모른다. 일방적으로 선을 정하고 유리한 합의를 강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에 비춰 새로운 형태의 압박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 후속 협상도 치밀해야 한다.
관세 협상 타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경제·사회 전 분야에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한·미 FTA 후에 다시 처음 가는 이 길은 위기이자 기회다. 정부는 이번 관세 협상으로 피해를 보게 된 분야에 지원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고, 산업구조를 혁신하고, 미국 의존도를 줄인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