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곳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강 작가, 프로야구 KIA 김도영, 프로축구 광주FC 이정효(49) 감독 사진이 나란히 걸린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자랑스러운 노벨상의 도시, 행복한 스포츠의 도시. 광주의 힘입니다’라는 문구도 보인다. 7일 광주축구전용경기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제가 저 분들 사이에 낄 수준은 아닌데”라며 겸연쩍어했다.
이 감독은 요즘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광주는 지난달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전에서 일본 J리그 챔피언 비셀 고베를 꺾고 8강에 올랐다. 오는 26일 광주가 ACLE 8강전에서 맞붙는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에는 주앙 칸셀루(전 맨체스터시티), 칼리두 쿨리발리(전 나폴리) 등 세계적 선수가 뛴다. 이 감독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거침없는 언변이다.

-알힐랄 이적 시장가치(몸값)는 2985억원. 광주(134억원)보다 20배 더 높다. 감독 연봉도 25배(알힐랄 조르제 제수스는 177억원, 이정효는 7억원)나 차이 난다.
“알힐랄 경기 영상을 조금씩 보고 있다.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고, 괴리감도 없다. 아무리 상대 선수가 좋아도 우리는 용기 있게 부딪히겠다. 나쁘게 말하면 ‘어떻게 골려주고, 열 받게 하지’ 생각 뿐이다. 우리는 경기를 주도하는 팀이다. 수비 위주로 내려 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면 저한테나 선수들한테 남는 게 없다.”
-광주는 만약에 다음달 3일 열릴 결승까지 오를 경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소속팀 알 나스르(사우디)와 맞붙을 수도 있다.
“은퇴할 날이 얼마 안 남은 호날두한테 현역 때 사인을 한 번 받고 싶다. 해줄지 안 해줄지 모르겠지만.”
-광주 선수단은 조별리그 일본과 중국 원정 땐 이코노미석을 탔는데, 이번에 사우디에 갈 땐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됐다.
“구단이 재정적으로 없는 살림에도 비즈니스석을 마련해줬다. 경기력이 좋아질 거고, 선수들도 자부심을 느낄 거다.”
-광주는 ACLE 출전하는 탓에 K리그 일정이 빡빡하다. 제주SK전(6일, 1-0 승) 사흘 만인 9일에 대구FC전을 또 치른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가는데 일정상 편의를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그는 대전하나시티즌전 당시 자기 벤치 쪽으로 물병을 찼다가 퇴장당했다. 직전 경기(지난달 22일 포항 스틸러스전, 2-3 패)에서 선수가 실신할 만큼 거친 플레이를 방관한 심판에 거세게 항의하다 밉보인 탓이라는 말이 돌았다.
“유럽축구에서 고의적인 파울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엄격하게 다룬다.”
-과거 이 감독은 한 선배 감독으로부터 “콘(훈련 도구)이나 놓던 놈이 많이 컸다”고 들었다고 폭로했다. 한 스페인 기자가 “통역관 출신인 주제에 왜 무례한가”라고 하자, 조세 모리뉴 감독이 “내가 명문팀 감독이 되는 동안 당신은 삼류기자에 멈춰있다”고 맞아친 장면이 오버랩 된다.
“모리뉴 감독의 발언에 공감한다. 한번 아랫사람은 영원히 아래인 것처럼 취급하는데, 그건 악습이다. (아랫사람도)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오르고 부모가 된다. 호칭도 바꾸고 인정해야 한다. 당시 화는 났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 기회로 삼았다. 어제 첫 승을 거두고 눈물을 쏟은 충남아산의 배성재 감독 인터뷰를 보고 ‘승리가 없어 본인 축구가 맞는지 조급했겠지만 금방 이겨낼 것’이란 장문의 메시지 보내줬다.”

-이 감독은 요즘 방송에서 활약하는 안정환(49)과 대학(아주대), 프로(대우 로얄즈) 동기이자 ‘절친’이다.
“전에는 동기를 아끼는 마음에 ‘인터뷰 수위 좀 조절하라’던 정환이도 요즘은 ‘하고 싶은 말 그냥 더 하라’고 한다. 그 정도 수준이 됐고 제 말에 힘이 있다고. 요즘은 어디 가서도 ‘이정효가 내 친구’라고 자랑한다더라.”
-2002 한일 월드컵 스타였던 안정환과 달리, 밑바닥부터 다져 지금 자리에 왔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진학해 취업할 때 가산점을 받는 건 인정한다. 다만 입사 후에 지방대를 나온 사람도 출발점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 대신 배경을 먼저 보는 건 잘못됐고, 내가 그런 선입견을 깨부수고 싶다.”
-유재학 전 농구 감독은 연세대 코치 시절 식당에서 학부모 신발까지 정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코치 생활 8년간 온갖 잡일을 다 했다. 처음엔 ‘저 감독처럼은 안 돼야지’ 했는데, 점점 ‘난 이런 감독이 돼야지’로 바꿨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 감독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전술을 연구한다’는 목격담이 인터넷 게시판에 종종 올라온다. 상대에 따른 변화무쌍한 ‘정효볼’의 비결인가.
“노트북 부팅에 시간이 걸린다. 훈련 프로그램 자료가 몇 백개, 1000개가 넘는다. 국내는 물론 맨유, 맨시티, 리버풀, 아약스 등 유럽 주요 팀별 폴더가 있다. 요즘은 아스널을 많이 참고한다.”

-시민구단은 선수를 잘 키워봐야 부자구단에 내줘야 한다. 지난 시즌 직후에도 정호연, 허율, 이희균 등이 떠났다.
“열 받죠. 스쿼드에 정호연, 이희균, 이순민, 티모 같은 선수들이 있었다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팀인데. 우승하고 싶은데 지금은 버티고 유지하는 팀이다. 하지만 누가 빠져도 대체할 수 있다. 우리는 골을 넣어도 훈련 때 못하면 출전할 수 없을 만큼 내부경쟁이 치열하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축구선수 한 명을 광주에 데려올 수 있다면.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비니시우스 말고 좁은 공간에서 연결하고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 호드리구(브라질)를 데려오고 싶다. 좌우는 물론 중앙까지 가능한 영리한 멀티플레이어 설영우(즈베즈다)도 높게 평가한다.”
-만약 PC 축구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을 운영한다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파트너로 누굴 세울 것인가. 손흥민(토트넘)은 어느 포지션에 배치할 건가.
“김민재가 왼쪽에 설 수도 있으니, 광주 수비수 변준수도 잘할 수 있다. 이강인(PSG)과 황희찬(울버햄프턴), 배준호(스토크시티), 엄지성(스완지시티) 양민혁(QPR) 등 젊은 좌우 윙어들이 즐비하니 손흥민을 원톱으로 세우겠다. 다만 부딪히고 압박하고 모범을 보인다는 전제조건을 달겠다.”
-ACLE 우승 상금이 1000만 달러(약 145억원)다. 만약 받는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선수들 보너스부터 챙겨주고, 선수 영입보다는 클럽하우스, 훈련장, 잔디 등 클럽 인프라에 투자하고 싶다.”
-광주 팬들은 이 감독을 ‘효버지’라고 부른다.
“난 장애 3급으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모신다. 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 등교 시켰다. 한 번은 6학년 주번이 아버지의 장애를 비웃기에 찾아가서 싸웠다. 아버지는 내가 지금껏 치열하게 버틸 수 있게 했다.”
-광주 팬들은 “불가능의 반대말은 광주”라면서 ‘제다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제 인생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선수들한테 세상에 안되는 건 없다고 말해준다. 노력하면 된다고. 10배, 100배 하면 다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