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는 지난 7일 용인 삼성생명전 3쿼터까지 49-46로 앞섰다. 그러나 마지막 4쿼터 10분 동안 단 1점만 넣고 20점을 내주며 50-66 역전패를 당했다. BNK 이이지마 사키가 막판에 자유투 2개 중 하나를 넣는 게 유일한 득점이었다. 그렇게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역대 플레이오프(PO) 한 쿼터 최소 득점 불명예를 썼다.
앞서 이보다 더 굴욕적인 기록도 나왔는데, 아산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16일 인천 신한은행전 1쿼터에 WKBL 28년 역사상 최초로 ‘한 쿼터 빵(0)점’에 그쳤다. 에이스 김단비가 부상으로 빠졌다지만, 난사한 야투 16개 모두 빗나갔다. 우리은행은 1월에 WKBL 역대 최소 득점 승리(43점)를 거두는 등 한 팀이 40점대에 그치는 졸전이 쏟아졌다.

이처럼 올 시즌 WKBL에서는 프로라고 믿기 힘든 황당한 기록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신한은행 김진영은 자유투를 백보드 상단에 맞혀 본인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 1월엔 신인상 출신 박소희 등 하나은행 선수들이 1점 차로 뒤진 종료 8초를 남기고 ‘폭탄돌리기’ 하듯 공을 돌리다가 슛도 못 쏴보고 졌다. 리그 연봉 총액 2위(4억2000만원) 신한은행 신지현이 지난달 노마크 레이업슛을 놓치자, 해설위원이 중계 도중 “연봉의 반은 반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해 WKBL 하이라이트’란 제목으로 어처구니 없는 플레이를 모아 놓은 영상이 올라왔다. ‘스포츠토토하는 이들만 보는 그들만의 리그”란 댓글이 달렸다.
WKBL 6개 구단은 은행 5팀, 보험회사 1팀으로, 금융권 모기업이 사회공헌 사업비로 넉넉하게 여자농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WKBL에 연봉 총액 4억원 이상을 받는 선수만 3명이다. 연봉 총액 1억원 이상인 선수는 34명으로 전체 40%에 달하는데, 10명 중 4명은 억대 연봉을 받는 셈이다. 반면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케이틀린 클라크(인디애나 피버)의 연봉은 7만6535달러(1억1100만원)로, 4억5000만원의 김단비(우리은행)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WKBL 감독을 지낸 한 농구인은 “박지수(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와 박지현(스페인 마요르카) 등 A급 스타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남은 선수들의 기량과 레벨 자체가 떨어진다”며 “2020년 국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도모하는 취지로 외국인선수 제도를 폐지했는데,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돼 지난해 파리올림픽에도 못나갔다”고 지적했다. 또 저득점 현상의 이유로 “몸싸움에 관대한 판정을 내리는 ‘하드콜’ 로 체력 소비가 많아 슛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 “수비 위주의 획일화 된 농구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근본적으로는 저출산 여파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구는 신체 능력이 중요한 종목인데, 키가 큰 여학생 중 농구하려는 이들이 급감해 인재풀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5월 연맹회장기 전국농구대회 8강전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숭의여고가 4쿼터 막판까지 12점 차로 앞섰지만 한 선수가 다쳤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가 5명 뿐이라서 남은 시간을 4명이 뛰며 역전패 당했다.
“우리나라 고교 여자농구팀은 19개밖에 없는데 일본은 3000개가 넘는 학교에서 선수를 뽑는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지난달 지도자상을 받고는 “한국여자농구가 과거에는 선배들이 좋은 성적(1984년 LA올림픽 은메달)을 거뒀는데 최근 침체됐다. 선수들이 조금 더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리그 MVP(최우수선수) 김단비 역시 “선수들이 예전보다 편한 걸 추구하고 헝그리 정신이 조금 없어졌다”고 쓴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