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엄마·할머니·남편도 잃다…“위스키” 그는 주문을 외운다

2025-04-10

지금도 무수히 많은 죽음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깨닫는 게 우리네 인생일까요. 그렇다면 이정숙(51)씨는 또래보다 일찍 인생을 알았습니다.

열 살에 기차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스무 살엔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죠.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충격으로 같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이씨는 답답했습니다. 슬프고 화도 났어요. 삶이 공평하다면 더는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일은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흔일곱의 가을, 사랑하는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떠나보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요!”

이씨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전날까지 가족 카톡방에서 웃으며 대화하던 남편이었습니다. 남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든 가족의 죽음을 여러 차례 겪은 이씨는 “왜 하필 나인가요”를 수차례 외치며 세상을 탓했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았을 뿐입니다. 차오르는 분노에 가슴 치며 울기도 했죠. “왜 또 너에게 이런 일이 생겼니”라는 주변의 말은 비수가 돼 이씨의 마음을 후벼 팠습니다.

그럼에도 이씨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씨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남은 가족들을 위해 용기 내 삶을 마주한 거죠.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같은 경험으로 힘들어할 때 꼭 필요한 위로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에세이집 『나는 사별하였다』(꽃자리)를 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씨는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약사인 이씨는 평생 아픈 사람들을 위해 약을 지었는데, 이제는 애도의 말과 글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듬고 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부터 아픔을 벗어나기까지, 이씨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 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10세, 아버지의 죽음을 겪다

처음 겪은 가족의 죽음은 언제였나요?

열 살 가을, 아버지께서 기차에 치여 돌아가셨어요. 그날 아침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한 게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였죠. 학교를 다녀오니 동네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시골이라 무슨 일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근데 누구도 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모두 당황했고, 자기 슬픔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그저 눈치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아챈 거 같아요. 기차에 치인 아버지 시신은 많이 훼손됐다고 해요. 그래서 장례도 하루 만에 진행됐습니다. 제가 1남4녀 중 막내였는데, 어리다는 이유로 상여 행렬에서도 배제됐어요.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그렇게 어영부영 보낸 거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궁금하지 않았나요?

엄청 궁금했죠.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말을 엿들으며 상상할 뿐이었어요. 선로에 발이 걸렸다, 누가 불러서 따라가다 변을 봤다, 스스로 선택한 거다 별별 소문이 다 있었어요. 혼란스러웠죠. 장례가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절 일으켜 세우더니 “왜 결석했는지” 묻더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참 서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잔인한 질문 같은데.

겨우 입을 떼어 아버지 장례였다고 말했는데, 이번엔 “왜 돌아가셨냐”고 묻더라고요. 참 잔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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