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정부는 전국 33개 지역을 대상으로 3600여억원 규모의 ‘스마트 하수도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 꼭 필요한지 경제성 등을 따져보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했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감사원이 한 하수처리장을 샘플로 점검한 결과 자동으로 수질을 측정하는 ‘스마트 센서’ 7개 전부가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지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 인력이 추가로 필요한 데다 신뢰성이 떨어져서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사업성이 없는데도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예산 낭비를 막는 문지기 격인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예타를 면제한 건수는 33건으로 전년보다 8건 증가했다. 2019년(39건) 이후 최대다. 사업비 규모로는 약 12조8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면제 건수는 예타를 심사 완료(통과·미통과)한 건수(15건)의 2배를 넘는다. 면제 건수가 심사 완료 건수를 넘는 건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예타를 받는 것보다 면제받는 게 더 흔해졌다는 이야기다.
예타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국고 300억원 이상) 대규모 신규 사업에 대해 사전에 실시하는 타당성 평가다. 재정 지출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도록 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지출 효율성을 높일 목적이다. 이런 예타는 2019년부터 무력화하는 모양새다. 그해 정부가 비수도권 사업의 경우 지역균형 발전 평가를 강화하고 경제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등 검증망을 느슨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예 예타를 면제하는 비중도 커졌다.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경제성이 떨어져도 지역균형 발전 측면 등을 크게 고려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약 4조7000억원 규모인 남부내륙철도가 2019년 1월 예타 면제를 받은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앞서 비용편익분석(B/C) 값은 1보다 낮은 0.72로 경제성이 나빠 예타를 탈락했지만, 마지막엔 예타를 면제하고 사업을 강행한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예타 제도가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예타가 제 기능을 못 하면 불필요한 예산을 거르지 못해 예산을 낭비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재정 집행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해친다. 정 소장은 “국가재정법상 10개나 되는 면제 사유를 대폭 축소하고 엄격화해 면제 건수·비중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면제를 할 경우 사후평가를 하고 제도 개선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국회에선 수년 전부터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예타 면제를 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분위기다. 2022년 4월 사업비 규모가 13조여억원에 달하는 가덕도신공항 사업이 관련 특별법에 근거해 예타가 면제됐다. 2023년 10월엔 같은 방식으로 14조원가량 사업비가 드는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이 예타를 면제받았다.
지난달엔 해상풍력 발전 사업에 대한 예타를 사실상 면제하게 하는 해상풍력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가 “기본적으로 예타를 받게 해야 하고 굳이 특별법이 아니어도 기존의 국가재정법상 면제 사유에 해당하면 면제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의 재정 낭비를 감시·견제해야 할 국회가 외려 예타를 무력화하고 선심 사업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회를 견제하도록 재정준칙을 마련하고 강제할 위원회를 세우는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