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사라지지 않으니까

2025-03-07

영원을 바라지만 무릇 영원한 것이란 없다. 생태와 환경이 전 지구의 화두인 지금, 잠깐이기를 바라지만 영원처럼 길어서 문제인 것은 많다. 특히 플라스틱. 수집광인 사진가 구성연은 유별나게 녹색을 좋아한다. 이미 2008년도에 동료 사진가 윤정미가 구성연의 녹색 수집품들을 죄다 늘어놓고 ‘성연과 성연의 초록색 물건들’이라는 사진을 찍었을 만큼. 어느 날 그런 구성연의 눈에 길거리에 버려진 예쁜 녹색 플라스틱병이 들어왔다. 이 병들은 팔리기 위해 그럴싸하게 디자인되었을지라도 쓸모를 다한 뒤로는 오랫동안 쓰레기로 살아갈 터였다. 특유의 수집벽과 안목을 지닌 구성연의 새로운 작업은 그 순간부터 비롯됐다.

작가는 버려진 녹색 플라스틱에서 가느다랗고 여린 난초잎을 탄생시켜 모래 위 바위틈에서 피워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공산품의 이력을 추적이라도 하듯 이파리 길이만큼이나 색깔도 몸체도 제각각이다. 물론 이 사진 속 난초들은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은은한 꽃향기를 피워내지는 않는다. 이슬을 머금지 않았는데도 시들지조차 않는다. 대신 단아한 인공 난초와 우직한 자연석의 대비 속에서 신인류의 존재 방식과 하찮은 물건의 운명을 마주하게 만든다.

한때 구성연은 다양한 모양의 알록달록한 사탕을 정교하게 엮어 아름다운 꽃으로 빚어내는 작업을 했다. 사탕은 구성연의 사진 속에서 잠시나마 아름다운 한때를 증명하다 이내 녹아 사라졌다. 이제 반대로 작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사물의 한때를 기록한다. 대신 그것들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잠시나마 다른 자태로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는 하찮은 녹색 병을 이렇게라도 사진으로 붙들어 둠으로써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 앞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전한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