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곡절 속에서도 끝이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윽박지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간엔 트럼프가 서둘러 우-러 전쟁을 끝내려는 게 화력을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돈다. 정말 그럴까?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행동을 미·중 패권경쟁의 차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취임 후 여러 행태를 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정면으로 겨냥한 모양새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용을 아낀다며 ‘미국의소리’(VOA)나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중국과의 여론전 최전방에서 싸워온 미디어들의 조직 축소를 지시한 것이다. VOA나 RFA는 한편으론 미국의 가치를 선전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치부를 파헤치는 보도로 유명하다. 특히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에 대한 보도는 여느 언론이 따라 하기 힘든 고난도의 일이다.

당연히 중국엔 눈엣가시다. 그래서인지 이들 매체가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언론은 반기다 못해 흥분한 모습이다. “중국에 대한 모든 악의적 거짓말에는 VOA의 지문이 있다”고 먼저 성토한 뒤 “거짓말 공장인 VOA가 마침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쓸려 들어가게 됐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1942년 설립된 VOA나 96년 세워진 RFA의 조직 축소 소식은 중국엔 복음(福音)처럼 들릴 것이란 말이 나온다.
만일 트럼프가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다면 과연 이런 조처를 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추구하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중국을 꼭 주저앉혀야 달성되는 목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미국의 이익, 그것도 눈앞의 이득을 챙겨야 이뤄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과의 협력으로 미국의 부(富)가 늘어난다면 트럼프는 바로 시진핑의 손을 잡을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빨리 종결돼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일부 땅이 러시아에 빼앗기는 건 관심 밖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우크라이나에 돈이 들어갈 무기 지원은 이제 그만이다. 대신 광물협정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이득을 취해 그동안 전비로 들어간 돈을 뽑아야 한다. 트럼프의 생각은 대략 이런 것이지 거창하게 중국과의 패권경쟁까지 염두에 두는 그런 전략적인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행보를 중국과의 패권경쟁과 엮어 너무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면 오히려 트럼프의 정책을 잘못 읽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