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쫓아낸 남아공 대사 환호 속 귀국…"훈장 삼겠다"
추방 원인 지목된 발언엔 "인물 아닌 정치현상 분석일 뿐"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쫓겨난 주미 남아공 대사가 자국인들의 환호 속에 귀국했다.
영국 가디언과 BBC 방송은 23일(현지시간) 남아공 케이프타운 공항에 에브라힘 라술 대사를 환영하는 수백명의 인파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공항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를 반겼고 '당신은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봉사했다'는 플래카드도 들었다.
라술 대사는 자신을 위해 모인 군중에게 "기피 인물로 지정한 것은 모욕감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환호를 받은 만큼 명예로운 훈장으로 삼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또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후회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고도 했다.
라술 대사는 지난 14일 미국으로부터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돼 추방 통보를 받았다.
미국이 자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추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라술 대사가 남아공의 한 싱크탱크가 주최한 웨비나에서 한 발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시 라술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다양성 정책과 이민자에 대한 탄압을 거론하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이 단순히 우월주의 본능이 아니라 미국에서 더는 백인이 다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대한 반응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그를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혐오하는 인종 공격을 하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라술 대사는 자신의 발언은 단순히 남아공의 지식인과 정치지도자들에게 미국 정치가 변했다는 점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오바마의 미국도 아니고 클린턴의 미국도 아니며 다른 미국이기 때문에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며 "인물이나 국가가 아닌 정치 현상에 대한 분석을 한 것이므로 내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남아공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민간인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것을 취하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과 남아공의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악화해왔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동맹인 이스라엘을 제소한 것을 들어 남아공을 반미 국가라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또 남아공 정부의 토지 수용 정책이 "인종 차별적"이라면서 남아공에 대한 원조 또는 지원을 중단하는 행정명령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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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