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입자가 집에서 극단 선택한 사실을 숨긴 집주인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어렵다"면서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봤다.
18일 JTBC '사건반장'에는 이 같은 고민을 하는 결혼 3개월 차 신혼부부의 사연이 보도됐다. 제보자인 30대 남편 A 씨는 "보일러를 아무리 세게 틀어도 신혼집에서 한기가 가시지 않아 닭살이 돋을 정도고, 아내는 향냄새를 맡았다"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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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신혼집으로 이사 온 뒤 아내와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아졌다"라며 "밤에 자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소파에 어떤 검은 형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봤다.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웃들의 시선이 찝찝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불편해하면서 피하더라. 동네 상가에서도 아파트 이름을 이야기하면 흠칫하면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 부부는 아랫집 택배가 잘못 배송돼 보관하고 있다가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아랫집 아주머니로부터 "그 집에서 사는 거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A 씨가 "안 그래도 자꾸 밤잠을 설친다. 이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물었지만, 아주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 못 한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라"라며 황급하게 말을 돌렸다고 한다.
끈질긴 추궁 끝 A 씨는 신혼집의 비밀을 알게 됐다. A 씨 부부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이 극단 선택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하는 등 동네가 뒤집혔다는 것이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그 일 이후 아무도 없는 위층 집에서 새벽마다 쿵쿵대는 소리가 나 너무 무서워서 결국 집을 내놨고, 요즘은 딴 데 가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임신한 아내와 단칸방서 사는 중"…法 판례서 "고지 의무 있다"
A 씨는 "집주인이 일부만 수리하고 바로 세입자를 찾았고, 그게 우리 부부였다"라며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강심장'이라고 수군댄 거였다. 우리 부부는 몰랐다. 공인중개사나 집주인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황당해했다.
결국 A 씨가 집주인인 80대 할아버지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집주인은 "무슨 소리하냐. 우리 집에서 사람 안 죽었다. 모함하지 말라. 조선 팔도에 사람 안 죽는 집이 어디 있냐?"고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A 씨가 "너무 께름칙해서 이사 가겠다. 전세금 빼달라"고 요청했으나, 집주인은 "그건 계약 위반이다. 계약 만료될 때까지 전세금 절대 못 준다"고 말했다.
A 씨는 "최근에도 아내와 함께 같이 자는데 가위에 눌렸고 동시에 깼다. 공포에 질려서 급하게 짐 싸서 집을 뛰쳐나왔다"라며 "아내는 임신한 상태다.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월세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열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이걸 법적으로 고지 의무가 있다고 정해놓지 않았다. 형사처벌 대상까지 되는지에 회의적이지만, 민사상 계약할 때 이 정도는 알려줘야 할 중요한 고지 의무가 있다고 보인다"며 "이사할 때 일종의 손해배상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사기라고 보기도 좀 어렵다. 계약상 착오에 의한 취소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건 고지해주는 게 맞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6년 비슷한 사건을 다룬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집주인은 이 같은 사정을 세입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
이 판례에서는 오피스텔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신의성실 원칙상 부동산 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사전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므로, 사건에 대해 고지받지 않은 세입자는 계약 취소나 파기를 할 수 있다고 봤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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