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의료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의 확산과 건강 데이터의 활성화로 인해 약국 산업에서도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의 국면에 진입하게 됐다. 약국 운영의 효율성과 고객 맞춤 서비스 제공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AI 기술의 실질적인 적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AI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약사의 결정을 보조하고 고객 경험을 재설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약국 현장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지 인식 기반 알약 카운팅 서비스는 조제 현장에서 정확도와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조제된 알약 이미지를 인식해 자동으로 수량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수작업에 비해 조제 시간을 줄이고 휴먼에러 가능성도 대폭 낮춰주고 있다. 특히 반복되는 단순업무를 줄여 약사가 더 중요한 상담이나 의사결정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간단한 문진 기반의 건강기능식품 추천 서비스도 확산되고 있다. 사용자의 생활 습관, 질병 이력, 건강검진 결과 등을 기반으로 AI가 최적화된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다 맞춤화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고 약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모델이 되는 동시에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접점이 된다.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한 발주 추천 시스템도 주목할 만한 영역이다. 전통적으로 약국의 발주는 과거 판매 데이터, 약사의 경험, 제약사의 권유 등에 의존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AI 기반 시스템은 비정형적인 주문 흐름, 계절성, 지역별 처방 트렌드, 소비자 성향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 분석해 최적 발주 시점과 수량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약사는 재고 과잉이나 품절 리스크를 줄이고 보다 정밀하게 약국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약국의 운영 방식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AI는 거래, 재고, 소비 패턴을 분석하여 최적의 주문 시점과 수량을 자동으로 제안할 수 있다. 약사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발주 업무에서 해방되어 보다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며, 실수를 줄이고 적시에 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환자의 이해 수준에 맞는 설명문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복약지도는 다문화 사회와 고령 사회에서의 의사소통을 보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높이고 약사의 상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조제 기록을 자동으로 생성해 추후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
이밖에 AI 기술을 기반으로 약국의 공급망 관리(SCM)도 고도화될 수 있다. 단순히 약을 주문하고 받는 수준을 넘어, 재고 회전율, 반품율, 유통기한 등 다양한 요소를 분석해 유통 효율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AI의 이런 기술적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과 활용 과정에서는 투명성과 윤리성이 담보돼야 한다. 약국이 다루는 정보는 건강, 복약, 진료 내역 등 민감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모든 기업과 기술은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의 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 환자와 약사, 플랫폼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AI 기술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AI는 약국 운영의 혁신을 넘어 약국이 지역사회 내 건강관리 허브로 자리잡는 데 필요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운영은 물론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약국 산업의 존재 가치를 재정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전환점이다. 약국, 플랫폼, 기술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김슬기 바로팜 대표이사 baro.kim@baroph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