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1060일 ⑥ 의대 정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의대 증원 정책은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역전 만루홈런 찬스였지만 헛스윙만 하다 삼진아웃당했다. 급기야 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이라는 황당한 조항을 넣었다.
윤 전 대통령은 의대 증원에 ‘나 아니면 누가 하나’ ‘다음 대통령은 겁먹어서 못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전직 대통령실 참모 A). 그러나 과정이 너무 거칠었고, 여건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3년 9월 용산을 찾았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B씨는 “조 장관이 500~800명 증원 등의 몇 가지 안을 들고 갔다가 질타당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3000명 증원’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조 장관이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이라는 기준을 들고나온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초부터 지역완결형 의료와 바이오 헬스에 매달렸고, ‘기승전 의대 증원’을 굳혔다. 은밀한 작업이 시작됐다. 그해 5월 한 일간지가 ‘복지부, 512명 증원 추진’이라고 보도하자 공무원 휴대폰 포렌식(통신 기록 복원) 작업이 벌어졌을 정도다. 복지부는 500, 1000명 식으로 단계적 증원을 선호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참모 B는 “대통령이 단계적 증원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고 말한다. 매년 늘릴 때마다 학교는 학칙을 개정하고, 의료계는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장관은 수차례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들고 갔고, 그때마다 지시사항을 받아 왔다. 2000명 최종 확정 시기는 지난해 1월 하순. 조 장관이 ‘정답 2000명’을 냈고, 윤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정부 전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정부는 극도의 비밀을 유지했다. 서류에 2000이라는 숫자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한덕수 총리나 국민의힘에 보고할 때도 말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절차 부실” 비판이 거셌지만, 복지부 관계자들은 “공청회에 숫자가 나오는 순간 의료계가 바로 뛰쳐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선 말렸다. 대통령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전 경북대병원장) 전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023년 말 용산을 찾았다. 윤 전 대통령은 증원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고, 정 전 원장은 건건이 “외람되지만, 아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의대 쏠림 탓에 이공계가 초토화됐다”고 하자 정 전 원장이 “증원하면 더 초토화된다”고 맞서는 식이다. 대통령실 참모 C는 “윤 전 대통령은 빙긋 웃었다. 정 전 원장의 말을 끊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전직 대통령실 참모 A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두 번 할 것도 아닌데, 특히 의사는 우리 편인데 욕먹더라도 하자”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로스쿨을 도입해 변호사를 늘려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좋아진 것처럼 의사를 늘리려 했다. 참모회의에선 검사 시절 의사 리베이트 수사를 종종 언급했다. “리베이트도 경쟁이 없어서 생긴 카르텔의 결과물”이라는 발언을 자주 하는 식이었다. 의사 집단은 혁파 대상 카르텔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D가 전한 상황이다. 박 위원장은 “2000명의 근거가 뭐냐” “계산이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금 늘려도) 10~20년 후 의사가 나온다. 밥그릇 뺏으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D는 “윤 전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둘이 거의 5대 5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달 초 2026년 의대 증원이 0명으로 되돌아왔다. ‘증원 개혁’이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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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