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을 사용하는 부품 회사들은 올해 들어 수주 건이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받아도 결국 빚을 더 얹는 것에 불과합니다.”
볼트·너트 등 산업용 파스너(잠금장치)를 생산하는 신진화스너공업의 정한성 대표는 최근 기자를 만나 대출 방식으로 운영되는 정부의 관세 지원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대미 수출액이 전체 매출의 20% 가까이 되는 정 대표의 회사는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파생상품인 파스너에도 50% 관세를 부과하면서 경영난이 한층 가중됐다.
정부는 관세 이슈가 불거진 5월 정 대표의 회사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긴급’을 거듭 강조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고물가, 고금리, 경기 침체로 기초 체력이 약해진 중소기업에 통상 이슈까지 겹칠 경우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했다.
긴급을 내세운 정부의 지원 제도는 정작 현장에서는 위기 대응이 아닌 ‘탁상행정’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대출 방식의 정책자금 외에도 관세 대응을 위한 수출 바우처 제도 역시 대표적인 탁상행정 사례다. 해외에 진출한 중소기업의 일정 금액을 정부가 바우처 형태로 보전해주는 기존 수출 바우처 제도는 업계에서 인기가 높다. 해외 마케팅과 통번역 서비스, 물류 통관 비용 등 글로벌 진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만큼 해당 제도를 이용하는 수출 중소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이 제도의 활성화가 글로벌 통상 이슈로 위기에 빠진 수출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철강·알루미늄 파생 제품을 만드는 볼트·너트 업체의 A 대표는 “미국 바이어와 협상이 끝나고 배로 물품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고율 관세가 적용돼 바이어가 갑작스럽게 인수를 거부했다”며 “보세창고에 물품을 보관해야 하는데 기존에 중기부 수출 바우처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관세 피해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뜻한다. 미국의 무차별 관세라는 위험한 고비에는 그에 걸맞은 리스크 대응이 필요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정부의 대책에선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