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위암 환자들은 한시가 급합니다. 풍전등화에 놓인 말기암 환자를 1년 넘게 더 살릴 수 있는 약이 나왔는데, 진단이 막혀 치료 기회를 상실한다니 가당키나 합니까. "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작년 9월 위암 치료제 '빌로이'와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던 바이오마커 '클라우딘18.2' 양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동반진단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로 인해 말기 위암 환자들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료계에 따르면 일본 제약사 아스텔라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클라우딘18.2 표적치료제 '빌로이(성분명 졸베툭시맙)'가 식약처 허가를 받고도 비급여 처방마저 불가능한 처지에 놓였다. 투약 기준인 클라우딘18.2 유전자 변이를 찾기 위한 진단검사법이 규제에 막힌 탓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 9개 단체가 참여하는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암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의 신속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빌로이는 지난해 9월 인간표피성장인자수용체2(HER2) 음성이면서 클라우딘18.2 양성 소견을 보이는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위암 환자를 위한 1차치료제로 시판허가했다. 클라우딘18.2 변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검사법인 한국로슈진단의 의료기기 '벤타나(VENTANA) CLDN18 (43-14A) RxDx Assay'도 같은 날 허가를 받았다.
통상 신약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으면 건강보험 항목에 등재되기까지 일정 기간 공백이 생긴다. 이 경우 환자가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로는 처방이 가능하다. 대한위암학회는 전이성 위암 환자에게 쓸만한 의약품이 부족했던 현실을 고려해 새로운 진료지침에서 클라우딘 18.2 양성 위암 환자의 우선 요법으로 권고했다. 개발사인 아스텔라스도 지난달 약을 들여온 상태다.
하지만 빌로이는 제약사가 임상 참여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동정적 사용(EAP) 외에 환자 치료에는 쓰이지 못하고 있다. 빌로이를 환자 치료에 쓰려면 클라우딘18.2 양성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때 환자에게서 채취한 암조직의 특정 단백질 분포도를 파악하는 면역조직화학염색검사법(IHC)이 필수적이다. IHC는 면역항암제의 바이오마커인 'PD-L1'과 표적항암제 바이오마커인 HER2, ALK 등의 양성 여부를 파악할 때 폭넓게 활용돼 왔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IHC 검사법에 암종이나 바이오마커가 새롭게 추가될 때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빌로이의 동반진단 허가 후 클라우딘18.2를 IHC에 추가하는 게 신의료기술인지, 기존 기술인지 등을 가려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 발단이다. 신약 사용을 애타게 기다려 왔던 말기 위암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조차 의아해 하고 있다. 식약처 허가를 통해 안전성, 유효성 등이 입증됐고 기존에 다른 약물 지표 검사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IHC 검사법에 대해 신규 항목을 넣으려면 추가 승인에 준하는 절차가 왜 필요하냐는 얘기다. 신약이 허가를 받은 지 3개월 가량 지났지만 심평원 고민이 길어지면서 여전히 검사법에 대한 사용 가능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치료제 사용이 시급한 암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평원이 클라우딘18.2 검사법을 '기존 기술'로 인정하더라도 위암 환자들은 해당 검사를 거쳐 빌로이로 치료받으려면 시일이 걸리게 마련이다. 만약 심평원이 '신의료기술'로 분류하면 절차는 더 복잡해진다. 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려면 의료기기 허가, 진단검사 신의료기술사용 평가, 의료행위 건강보험 등재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대 320일이 걸린다는 게 환자단체의 설명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빌로이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미국암종합네트워크(NCCN)와 한국형 위암 진료 가이드라인에 모두 등재됐다"며 "클라우딘 18.2 진단 공백으로 말기 위암 환자들이 피해보는 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약 개발과 첨단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동반진단 관련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들의 치료 접근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생명과 직결된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동반진단 제도 관련 개선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