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그간 클라우드가 디지털 혁신의 핵심 인프라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그 클라우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권한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극소수 미국 빅테크 기업이 독점해왔다. 우리의 데이터는 태평양을 건너 그들의 서버로 흘러 들어갔고, 그들의 알고리즘에 의해 재가공돼 우리에게 돌아왔다. 만일 디지털 식민지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 각국 정상이 ‘소버린(Sovereign·주권) AI’를 외치는 배경에는 바로 기술 의존에 대한 강력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소버린 AI란 타국 기업의 AI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자국의 가치관과 법률에 맞춰 설계된 AI로, 기술 주권 확보를 목표로 한다. 소버린 AI를 지지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첫째, 국가안보다. 국방이나 전력망 같은 국가의 핵심 인프라를 타국의 알고리즘에 맡기는 것은 국가의 뇌를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사시 외교 관계가 틀어져 상대국이 접속을 차단하거나 기술 지원을 끊어버린다면 그 순간 국가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둘째, 데이터 보호다. 데이터는 한 국가의 고유한 문화적 DNA다. 자국 내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정보 유출을 막는 방화벽이자 우리만의 언어와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셋째, 경제적 독립이다.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것은 영원히 월세를 내는 세입자 신세를 면치 못함을 의미한다.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미래 산업에서 창출될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는 고스란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지갑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독자적인 AI 산업 육성은 기술 종속의 사슬을 끊고 자국 내 양질의 일자리와 미래 성장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제적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뒤에는 날카로운 역설이 숨어 있다. 바로 소버린 AI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특정 기업, 즉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한다는 점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CUDA)까지 감안하면 기술 주권을 외치며 또 다른 형태의 기술 종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회의론자들의 경고처럼 ‘디지털 갈라파고스’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오픈AI나 구글이 매년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연구개발(R&D) 규모를 개별 국가나 기업이 따라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어설픈 애국주의에 기대 성능이 떨어지는 국산 AI 사용을 강제하거나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규제를 강요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세금 낭비, 기업 경쟁력 약화, 국민의 기술 접근성 저하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버린 AI는 탐색할 가치가 있는 방향이다. 단 그것은 맹목적인 국산화가 아닌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는 지금 기술 패권의 새로운 생태계 재편에 돌입했다. 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완전한 기술 자립은 환상일지 모르지만 완전한 기술 종속은 악몽이다. 소버린 AI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생존 본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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