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소련을 제치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며 우주 강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위상은 1990년대 들어 서서히 하락하고 있었다. 1986년 챌린저호, 2003년 컬럼비아호의 두 차례 폭발 사고로 유인 우주 비행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고, 막대한 비용에도 뚜렷한 혁신을 내지 못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대한 회의론도 커졌다. 사실상 정체 상태에 빠진 미국의 우주 산업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닌 ‘부담’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침체 상태였던 미국의 우주 개발이 다시 제2의 황금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해에만 145건의 로켓 발사가 이뤄졌고 미국은 다시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우주인을 보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앞다퉈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 발사대가 부족할 정도다.
신간 ‘인피니트 마켓’은 주춤했던 미국의 우주 산업이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미래 성장의 엔진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를 경제학적 시각에서 짚어낸다. 저자 매슈 와인지얼은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최초로 우주경제학 강의를 만든 인물로 현재 하버드 MBA 프로그램 부학장을 맡고 있다. 민간 기업과 정부 기관을 넘나들며 우주 전략 자문을 제공해온 경제학자다. 공동 저자 브렌던 로소 역시 미 우주군 전략 컨설턴트 출신인 차세대 우주 산업 전문가다.

저자들은 방대한 정책 자료와 기업 사례,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미국 우주 산업의 궤적을 추적한다. 변곡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우주 탐사 비전’을 내세우며 아폴로 시대의 개척 정신을 되살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두 갈래의 전략을 동시에 가동했다. 하나는 기존의 방식대로 민간 기업에 대형 발사체 개발을 의뢰하되 소유와 운영은 공공이 맡는 ‘콘스텔레이션 프로젝트’다. 실패 위험이 큰 만큼 정부가 비용을 보전하고 일정 수준의 이윤까지 민간 기업에 보장하는 대신 나사는 설계부터 시험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했다.
반면 또 다른 전략은 훨씬 실험적이었다.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우주선을 개발하고 성능과 안전 기준만 충족하면 정부가 고정 가격으로 운송 계약을 맺는 소규모 파트너십 모델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가격 안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기업들은 효율과 혁신을 스스로 끌어올려야 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나사가 직접 비행기를 만들던 시대에서 이제는 비행기 티켓을 사는 시대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업 시장에서는 당연한 방식이었지만 우주 산업에서는 전례 없는 시도였다.
베팅은 성공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첫 고정 가격 계약을 따낸 신생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스페이스X다. 2006년 스페이스X는 전체 개발비 9억 달러의 절반가량을 나사로부터 지원받고 나머지를 일론 머스크의 사비와 민간 자본으로 충당했다. 그 결실로 2010년 중형 발사체 ‘팰컨 9’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스페이스X는 여기서 얻은 기술과 자본을 재투자해 로켓 재사용이라는 혁신을 이루며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이후 상업용 위성 발사, 정부 계약, 민간 투자를 통해 성장하면서 ‘우주 운송 회사’에서 ‘우주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했다.
우주 산업의 확장은 스페이스X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블루오리진, 로켓랩 같은 발사체 기업들이 비용을 낮추자 이를 기반으로 우주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래닛이다. 수백 기의 소형 위성으로 지구 전체를 매일 촬영해 재난 대응, 농업 관리, 보험 분석 등 다양한 산업에 데이터를 제공한다. 인튜이티브 머신즈, 블랙스카이 테크놀로지 등 새로운 기업들도 우주 탐사, 분석, 모니터링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넓히고 있다.
저자들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던 우주 개발이 본격적으로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시장 논리’가 우주 공간에도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수요와 공급, 경쟁, 투자와 혁신이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우주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앙집권적이고 비대한 관료 조직이었던 나사에서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에 기대 우주 사업을 해왔던 록히드마틴이나 보잉이 신생 기업들에 밀리고 있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들은 우주 산업에도 ‘후생경제학 제1정리’가 점차 적용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외부 효과만 없다면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이 가장 효율적이다”라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가 드디어 우주 영역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주 쓰레기, 군사적 경쟁, 자원 소유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미국의 첫 번째 우주 산업 황금기가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에서 비롯됐다면 이제 열리고 있는 두 번째 황금기는 민간 생태계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이제 막 후발주자로 합류한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초로 민간이 주도해 제작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27일 성공적으로 발사돼 탑재 위성들을 예정 궤도에 올린 것은 그 상징적 장면이다. 첨단 미래 산업인 우주 경제의 변화 흐름을 이해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되는 책이다. 436쪽. 2만 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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