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 디지털자산 시장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디지털자산 투자 강국입니다. 디지털자산 투자 계좌를 보유한 소위 '코인개미'의 숫자가 1560만명에 이르고 한국 코인개미의 입김에 디지털자산 가격이 오르내릴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지닌 나라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적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의 약소국인 듯합니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을 이끄는 주도권 경쟁에서 너무나 한참 뒤처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당국 차원에서 디지털자산 시장 진흥을 위해 제대로 한 일이 없는 탓에 우리나라는 디지털자산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동력을 충분히 갖고 있음에도 주도권 경쟁에 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미의 힘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국가의 힘은 세계 하위권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디지털자산 시장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디지털자산 규제 유예 제도와 토큰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자산 사업자와 기존 금융기관 간의 협력을 장려해온 싱가포르는 지난해에만 10여개 글로벌 기업에 디지털자산 거래 인허가를 내주고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장려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밀린 감이 있지만 홍콩도 아시아에서 최초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디지털자산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는 등 아시아 국가 간 디지털자산 주도권 경쟁에서 앞서간 전례가 있습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디지털자산 시장에 호의적인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태국 자산시장에서도 디지털자산 현물 ETF 출시가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말레이시아는 총리가 직접 나서서 디지털자산 산업 진흥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메타플래닛 등 법인의 디지털자산 투자가 활발한 편이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19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범죄수익으로 압류한 물량이지만 국가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인 만큼 추후 중국 정부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아시아 외 지역을 살펴보면 6일 뒤에 새롭게 출범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전부터 '디지털자산 친화적 정부'를 표방하고 디지털자산 친화적 정책을 예고하면서 세계의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봅시다. 미국 자산시장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가 정식으로 출시된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디지털자산 현물 ETF 시장 개방 여부를 검토만 하고 있습니다.
법인의 디지털자산 투자는 여전히 길이 막혀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 비영리법인에 대한 디지털자산 투자와 거래를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하면 늦어도 너무나 한참 늦은 행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아시아 디지털자산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우려가 듭니다. 남들은 열심히 뛰는 것도 모자라 날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기어가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코인개미의 눈은 이미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지만 사업 진흥의 사명을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정부 당국자들의 눈과 귀는 닫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디지털자산 시장 진흥을 향해 눈과 귀를 막은 당국의 폐쇄적 태도는 자칫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시장을 퇴보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미 이 우려를 시장 안팎에서 숱하게 지적했음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지요. 답답할 따름입니다.
오는 20일 물러나기로 한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대한 글로벌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그는 디지털자산을 자산시장의 걸림돌로 규정하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디지털자산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사람입니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투자자들, 특히 미국의 투자자들은 겐슬러 위원장을 향해 "당신 때문에 내가 이득을 보지 못했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SEC 위원장직 사임을 발표하자 "함께 해서 기분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까지 쏟아내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당국도 디지털자산 시장을 향해 적극적인 개방 기조를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1600만명에 육박하는 코인개미들이 우리 정부를 향해 "당신들 때문에 내가 이득을 못 봤다"는 비난을 쏟아낼 것입니다.
욕먹기 전에 알아서 잘하면 모두가 편합니다. 어서 움직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