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연구진이 바이오 신소재와 신약 원료의 생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시설 ‘바이오파운드리’를 통해 온실가스를 유용한 자원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이승구 국가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장 연구팀이 산업적 활용이 가능한 바이오파운드리 자동화 실험 체계(워크플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메탄을 친환경 바이오소재로 전환하는 가능성을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트렌드 인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지난달 12일 게재됐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인공지능(AI)·로봇공학 등을 적용한 자동화 공정으로 유전자·단백질·인공세포·균주 같은 생명체 구성물, 즉 바이오 신소재와 신약 원료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 사람이 직접 원료를 합성하는 것보다 5배에서 수십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모더나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원료인 ‘핵산 중합효소’를 바이오파운드리로 대량 생산해 코로나19 대유행을 단기간에 종식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업단은 올해부터 2029년까지 5년 간 1263억 원을 투입해 국가 바이오파운드리를 짓고 활용하는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단을 이끄는 이 단장 연구팀이 관련 기술로 실제로 소재를 합성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메탄은 대기 중 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이산화탄소보다 84배 이상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키지만 이를 줄일 수 있는 자연적 흡수 경로는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환경 바이오소재 생산을 위한 바이오촉매와 인공미생물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AI 설계·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샘플 준비부터 유전자 조립, 미생물 도입 등 핵심 과정을 자동화 장비로 처리한 결과 실험 속도가 단계에 따라 최소 4배에서 36배까지 빨라졌다. 같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실험 건수도 대폭 늘어나 연구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이번 연구는 이소프렌 합성 효소(IspS) 개선에 적용됐다. 이소프렌은 타이어, 접착제, 연료첨가제 등 전 세계 산업에서 널리 쓰이는 핵심 원료다. 기존 효소는 제대로 발현되지 않거나 활성이 낮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에 큰 제약이 있었다.
연구팀은 바이오파운드리 워크플로를 활용해 효소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그 결과 효소의 반응 효율이 최대 4.5배 높아지고 열에 대한 안정성도 향상됐다. 이렇게 개량된 효소를 메탄자화균에 도입하자 온실가스 메탄을 이소프렌으로 바꾸는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는 ‘온실가스 저감’과 ‘화학원료 자급’이라는 두 가지 산업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 해법으로 평가된다.
이번 성과는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대표적 공공 바이오파운드리인 ‘애자일 바이오파운드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진행됐다. 애자일 바이오파운드리는 선도적인 자동화 기술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보유한 기관이다. 이번 공동연구는 한국이 글로벌 바이오파운드리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단장은 “계산 설계, 자동화 실험, 대규모 데이터 검증을 하나로 통합한 확장형 워크플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축적될 고품질 데이터는 AI 설계와 학습을 더욱 정밀하게 만들어 바이오제조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