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韓 시가총액 美의 30분의1 불과한데
상장회사 수는 2분의1 달해… 너무 많아
좀비기업들 퇴출하고 AI 벤처 키워야
수수료 중심 거래소 수익 구조 경쟁력 ↓
가상자산ETF 도입·24시간 운영 추진
블록체인 기반 토큰증권 선점도 모색
현재 ‘코리아 디스카운트’ 정상화과정
지배구조 합리화·주주 보호장치 강화
증시 부양책 효과 내도록 정부와 노력
이재명정부가 ‘코스피 5000’시대를 천명하면서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대변혁’이 시작됐다.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밸류업 프로그램에 더해 개정 상법을 통해 주주이익이 극대화되는 한편 주가조작 범죄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합동대응단이 신설되는 등 자본시장 곳곳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 중심에 한국거래소가 있다. 코스피 5000을 향한 새로운 물결을 함께 준비하는 거래소는 한국 증권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으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과 주주권익 보호, 시장 감시라는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만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새 정부의 희망대로 코스피가 5000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된 좀비기업을 국내 증시에서 퇴출하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AI 기업 등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체거래소의 등장과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 및 토큰증권(STO) 등 전통 자본시장을 위협하는 새로운 금융의 거센 도전 앞에 거래소가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데이터 및 인덱스 사업을 위한 인수합병(M&A)’과 ‘24시간 운영체계’, ‘가상자산 ETF 도입’ 등을 꼽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유가증권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그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그동안 소외되고 ‘디스카운트’(저평가)돼 왔던 국내 증시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입되면서 저가 매수세가 형성됐다. 여기에 그간 거래소가 해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새 정부의 소액주주 권익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등 정책이 증시부양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는 과거 한국 증시가 소외당한 과정에서 저평가된 종목들이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특히 금융주들의 경우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6∼0.8 정도로 아직 저평가돼 있다. 거래소는 정부의 정책목표 달성 지원을 위해 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 확립을 독려하고, 이러한 개선 노력이 투자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거래소는 어떠한 전략을 갖고 있나.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과거 주식시장을 통한 상장이었다면 최근에는 국민연금과 각종 공제회 등을 통한 프라이빗 파이낸싱(비공공 재원조달)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최근 가상자산과 함께 가상자산 기반의 ETF 시장도 급성장하면서 거래소 간 글로벌 유동성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 증시에 상장한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자산 총액은 1290억달러(약 185조원)를 돌파해 미국 금 ETF 운용자산 규모(1240억달러)를 추월했다. 가상자산 상품에 대한 정부 정책에 맞춰 글로벌 상품 경쟁력을 갖추고 국내 투자자금의 해외 유출을 방지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대응 방향을 검토할 계획이다. STO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도 가시화되는 만큼 거래소도 블록체인 기반의 STO 유통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부실기업을 퇴출하기 위한 상장폐지 요건이 상향됐다. 일각에선 상장폐지 기준이 너무 엄격해졌단 평가도 있는데.
“한국엔 상장사가 너무 많다. 지금 2633개(11일 기준 코스피 819개·코스닥 1697개·코넥스 117개)가 상장돼 있다. 우리나라는 시가총액으로 보면 미국 증시 상장사 시총의 30분의 1에 불과한데, 상장회사 수는 2분의 1이다. ‘좀비기업’들이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문제 기업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AI 기업 등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벤처기업들이 차지해 새로운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그 대신 사업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실패할 경우 빠르게 정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체거래소 출범으로 거래소 산업도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접어들었는데.
“해외 주요 거래소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경쟁력과 수익성을 강화했지만, 한국거래소는 수수료 중심 사업구조를 유지 중이다. 우리 거래소의 관계사인 코스콤과 예탁결제원을 포함한 연결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은 한해 4000억원 수준이다. 규모가 비슷한 런던거래소나 프랑크푸르트거래소의 경우 당기순이익이 4조∼6조원대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첫 번째가 가상자산 ETF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와 같이 적극적인 가상자산 ETF를 통한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거래소가 축적해온 데이터와 인덱스에 AI 모델을 접목한 사업모델을 구상 중이다. 필요하다면 M&A를 통해 자회사를 보강하려고 추진 중이다. 또 현재 매매일로부터 2거래일 뒤에 증권 및 대금이 결제되는 ‘T+2’ 거래체계를 ‘T+1’체계로 바꾸려고 구상하고 있다.”
―최근 24시간 거래 등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는데, 노조의 반발은 없나.
“글로벌 거래소와 경쟁하려면 24시간 거래체계는 필요하다. 거래시간 연장은 투자자 편의 제고 및 글로벌 투자자 유치 등 우리 시장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미 미국 거래소는 아시아 국가 투자자 유치 등을 위해 24시간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만 지연될 경우 경쟁에 뒤처질 우려가 있다. 주52시간 근로시간을 지키기 위해 교대근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사실상 24시간 거래 중인 파생상품 시장의 경우 3교대로 근무 중이다. 다만 야간 근무의 경우 그만큼의 보장이 따라야 한다. 대체거래소의 운영시간 등을 고려해 향후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향후 한국 금융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하나.
“한국 금융시장은 대변혁기다. 향후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제1금융권이 증권사 등 제2금융권으로 대체될 것으로 본다. 400조원의 자산을 가진 은행들이 2조원의 이익을 낼 때 규모가 훨씬 적은 증권사들도 비슷한 규모의 수익을 내고 있다. 즉 원금보장을 넘어서 수익률을 보장하는 증권 등 투자처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금융환경이 10∼20년 뒤에도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한국거래소도 향후 어떤 상황을 맞이할지 모르는 만큼 변화하는 시장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상자산 ETF와 STO에 대한 평가는.
“지급결제 수단의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거래소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그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업이 상장이 필요하다면 거래소 시장으로 올 것이다. 가령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나 빗썸이 한국거래소에 상장하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현재 일부 논란이 되는 한국은행 중심의 통화운영은 민간시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현재 국회에서 제안된 입법안처럼 자본금 5억원이나 10억원을 발행사 기준으로 하는 것도 가상자산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기관과 기업들이 최소 2∼3개 컨소시엄을 구성해 확실한 관리·감독하에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통해 얻는 이익을 어떻게 사회로 환원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의 이익과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개정 상법에 대한 입장은.
“일반주주 권익보호 및 지배구조 합리화 등을 위한 상법 개정의 취지에 공감한다. 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 차원에서 주주 보호장치를 강화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의 완화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에서 후속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한국거래소도 관련 사항들을 신중하게 검토해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언한 코스피 5000의 실현 가능성은.
“가능할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꼭 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산업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달린 문제다. 현재 한국은 제조업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있다. 소니와 토요타에 의지한 채 변화에 실패한 일본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우리나라에 뒤처졌다. 테슬라와 엔디비아 등 새로운 산업군을 육성해 구조전환에 성공한 미국은 선진 자본시장을 구축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산업전환이 미국처럼 성공하느냐, 일본처럼 뒤처지느냐가 코스피 5000 달성에 성공하느냐를 가르게 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와 금융당국이 관리자로서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기업을 키우는 협력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가능성 있는 기업에는 지원을 통해 육성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1961년 출생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기획재정부 차관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장 ●제14대 금융감독원장 ●제8대 한국거래소 이사장(2024년 2월∼ )
대담=우상규 경제부장, 정리=김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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