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연한 완벽주의자
앨런 핸드릭슨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책 때문이 아니라 내가 완벽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인 까닭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역지사지(易地思之), 여덟 글자를 삶의 신조로 삼고있는 나로서는 나 자신에게 또 남에게도 완벽을 다그칠 일이 없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고 내가 그런데 남이라고 다를소냐, 좋게는 무리 없이 솔직하게는 설렁설렁 살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게 있다. 완벽주의라는 게 꼭 완벽주의처럼 생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선의로 말했을 뿐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완벽의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흔한 사례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괜찮다. 다만 뭘 하든 최고가 되거라.”
아버지는 말하면서 자신이 시크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지 못하면 너는 가치가 없어”라는 메시지로 들리는 것이다. “져도 (혹은 떨어져도) 좋아.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쿨한 격려 같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졌다(떨어졌다)’는 자괴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남이 무심코 한 말에서 치명상을 받을 수 있는 완벽주의자들에게 그 완벽주의를 삶의 장애가 아닌 든든한 우군으로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는 가이드북이다. 또한 (저자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완벽주의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남한테 상처 아닌 희망을 안겨주는 말하기 또는 행동하기 요령을 알려주는 참고서이기도 하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자신도 완벽주의자인 저자는 완벽주의를 세 가지로 나눈다. 먼저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유형이다. 이들은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운 뒤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혹한 비난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충족했을 때는 기준이 너무 낮았다고 성과를 깎아내린다. 월트 디즈니가 그랬단다. 첫 개봉 때만 오늘날 가치로 9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도 그의 완벽주의 탓에 빛을 못 볼 뻔했다.
둘째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높은 수준을 기대하는 형태다. 자신이 세운 완벽함의 기준을 타인에게 가차 없이 요구하며 충족하지 못하면 경멸하거나 분노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세 번이나 퇴짜놓고 밤 10시에 도착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피아노 위치를 바꾸라고 소리쳤다는 스티브 잡스가 전형적 인물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가 있다. 남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가혹한 비난을 받는다고 느끼는 부류다. 가장 해로운 완벽주의인데 오늘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무래도 소셜미디어 탓이 클 텐데, 무대 위에서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무대 뒤의 열등감을 동시에 증폭시킨다. 보여주는 사람은 클릭과 팔로워 수에 집착하고, 보는 사람은 연출된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고통받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라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은 대부분 ‘성실성’이라는 놀라운 무기를 갖고 있다. 사고와 행동을 조금만 전환하면 성실성은 한 번의 도약으로 완벽주의자의 높은 기준을 훌쩍 뛰어넘게 해준다. 따라서 이 책은 기준을 낮추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저자는 완벽주의자의 7가지 특징을 제시하고, 각각의 특징에 맞춰 완벽주의를 유연하게 만드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니 그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대신 완벽주의자가 아닌 내 얘기로 시작한 만큼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처방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저자는 1960, 70년대 미 UCLA대학 농구팀의 전설의 명감독 존 우든을 예로 든다. 그는 선수들에게 “네가 최고야”, “넌 형편없어”라는 식의 칭찬과 비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걸어 다니지 않기”, “키 작은 선수에게 패스”, “가슴께에서 패스”….
결과는 12년 동안 전미 챔피언십 10회 우승, 7년 연속 우승이라는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었다. 변화의 힘은 평가가 아닌 정보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강우의 무지(無智) 무득(無得)]재상위불릉하 재하위불원상(在上位不陵下 在下位不援上)](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3/10/05/news-p.v1.20231005.babbd738f0eb45a08c3965fde6fe2c37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