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경영계가 술렁이고 있다. 과태료·과징금에 더해 입찰 자격 영구 박탈까지 거론되는 등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경영계는 산재 사고 예방책을 강화하는 게 먼저라며 우려하고 있다.
중처법 강화해도 늘어난 산재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지난해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하지만 법 제정 당시 제기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의 산재 예방 관련 예산은 2020년 5134억원에서 지난해 1조2878억원으로 2.5배 늘었지만, 이 기간 집계된 산업재해자 수는 10만8379명(2020년)에서 14만2771명(2024년)으로 되레 늘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2022년 중처법이 우선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의 사고 사망자는 2021년 248명에서 2024년 250명으로 2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중견기업 “안전 예산 부족”

기업인들은 처벌에만 초점을 둔 중처법은 효과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정책이 중소·중견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보물 인쇄업체인 푸드프린테크의 김윤중 대표는 “안전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월 매출이 1억원 안팎인 회사에서 유해물질 정화 설비를 설치하는 데만 수천만원이 드는데 경기 침체로 일감까지 줄어든 마당에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김인순 지제이알미늄 부사장도 “중국발 저가 공세로 국내 제조업이 고사할 위기다. 중소기업은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안전 기준 현실화” 목소리

경영계는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사후 처벌보단 기업들의 예방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지원과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경총이 개최한 ‘산재예방 정책 개선 토론회’에서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새로운 처벌 수단을 고민하기보다 현행 안전기준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며 “안전 역량 부족으로 중처법 기준 준수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이지만 사업주의 자율적인 산재 예방 활동을 유도하는 내용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유사한 안전관리 체계를 담은 중처법이 제정돼 규정은 중복되지만 효과는 떨어진다는 의미다. 정교수는 “한국은 처벌에 집중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제의 한계로 ‘고비용 저효과’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업주의 자율적 산재예방 활동을 촉진하는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고 예방에 초점을 둔 별도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공 재원을 적극 투입해 산업 현장의 안전 수준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기업들이 산업 안전 강화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사업장 안전 준수 기업에 더 큰 보상을 제공하는 식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안전 전문인력 양성과 안전기술 연구개발 분야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별도 법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