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멕시코 120돌 기념 고국방문> 동포들 만나다

2025-04-06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0년 주년 바로 오늘, 제 증조부모님인 라우레아노 리아스(이치원)와 마르타 페레즈(배 부인)는 네 자녀와 함께 부산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여덟 살, 마리아(이갑녀)는 여섯 살, 호세 마리아(이광수)는 네 살, 후아나(이갑년)는 생후 6개월이었습니다. 여권 문제, 전염병 발생, 이민의 합법성 문제로 인해 출발이 두 달 동안 지연되었고, 혼란스러운 출항 당일 큰아들이 길을 잃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겨졌습니다. 그 비극은 평생 가족들을 괴롭혔습니다. 증조모는 날마다 남겨두고 온 큰아들을 그리며 울었다고 했고 증조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식을 잃은 슬픔뿐만 아니라 고향, 정체성,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잃은 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후손들을 찾고 있고, 어머니의 DNA 매치 결과를 기다리며 낯선 사람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해볼 것입니다. 그들(잃어버린 큰아들과 후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고, 여전히 생각하며,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제(4일)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상열)에서 있었던 <한ㆍ멕시코 120주년 기념 고국방문> 동포행사에서 다이안 로렌드(Diann Rowland) 씨가 한 말이다. 다이안 로렌드 씨가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박물관 강당에 모였던 사람들도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날 행사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멕시코와 쿠바에 살고있는 독립운동가 후손 40여 명의 고국방문단이 한국이민사박물관을 방문한 행사였다. 이번 고국방문단의 독립유공자 명단은 ▲주현측(1990, 애족장), ▲임정구(2013, 애국장), ▲강영문(2012, 애족장), ▲권영복(2015, 건국포장), ▲박희성(2010, 건국포장), ▲이돈의(2017, 대통령표창), ▲박창운(2011, 애족장), ▲오임하(2014, 애족장), ▲양순진(2015, 건국포장), ▲이재희(2011, 대통령표창), ▲김경보(2021, 대통령표창), ▲윤혁(2022, 애족장) ▲조기호(2021, 대통령표창), ▲김용선(2016, 건국포장), ▲이우식(2011, 건국포장) 선생 등의 후손 등 40여 명이다.

“고국방문단을 꾸리기 위해 우리는 1년여 이상 준비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 행사가 아니라서 모든 경비를 후손들이 직접 마련해야 했던 점과 고국방문 때 어디를 방문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까지 일일이 우리 힘으로 준비하는 작업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개인이 하기에는 벅차 우리는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독립유산’이란 단체를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이번 행사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이번 <한·멕시코 120주년 기념 고국방문> 행사를 기획한 임인자(주현측, 권영복 지사 후손)씨의 이야기다. 임인자 씨는 다이안 로렌드(Diann Rowland) 씨와 함께 멕시코ㆍ쿠바 동포를 위한 ‘한국독립유산’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 고국방문단은 지난 3월 26일 서울에 도착하여 그동안 천안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교회 유적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광복회 등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제(4일)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인천 중구 월미로 329)과 어제(5일)는 임진각 등 비무장지대 일정을 마치고 오늘(6일) 출국을 앞두고 있다. 이번 고국 나들이는 11박 12일 일정으로 독립운동가들 후손답게 국내의 독립운동 관련 시설 방문을 주요 일정으로 잡았다.

특히 이번 <한ㆍ멕시코 120주년 기념 고국방문>에서는 아주 뜻깊은 만남도 있어 주변의 관심을 끌었다. 뜻깊은 만남이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던 차이석(차리석, 1962, 독립장) 선생의 국내 거주 외손자들과 이번 행사를 기획한 ‘한국독립운동유산’ 임인자 공동대표와의 만남이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차이석(1881-1945) 선생은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두 동생 차정석(1884-1956)과 차보석(1892-1932)을 두고 있는데 이번에 방한한 임인자 공동대표는 차보석 가계(家系)의 후손으로 이들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기자도 이번 만남을 주선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얼굴도 모르는 고모할머니(차보석)지만, 외할아버지(차이석)의 여동생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외할아버지 형제들은 고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서로 떨어져 오랫동안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각각 외국에서 숨을 거두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저의 집안도 이렇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120년 전 정든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인 멕시코와 쿠바 등지로 가서 온갖 역경을 이겨낸 후손들의 노고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열악한 노동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밉니다. 올해 한국과 멕시코 이민 120주년을 맞이하여 고국을 찾은 후손들과 앞으로도 의미 깊은 교류가 이어지길 빕니다.”

이는 멕시코ㆍ쿠바 동포들의 고국 방문에 대해 차이석 선생의 외손자들인 유기석(78)ㆍ기방(70)ㆍ기수(68) 씨가 한목소리로 한 이야기다.

“제가 임인자 공동대표와 ‘한국독립유산’ 단체를 설립하고 이번 고국방문 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조상들의 용기와 강인함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찾고, 그 불꽃을 지피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이곳에 왔습니다. 전쟁, 폭력, 식민주의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 언어, 정신을 되찾기 위해 왔습니다. 조상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유산이고, 그들의 꿈을 이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독립유산’ 공동대표인 다이안 로렌드(Diann Rowland)씨는 이렇게 고국방문 소감을 말했다. 이어 “우리 조상이 멕시코에서 겪은 노예노동 상태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전부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애니껭’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고된 노동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그 단어로 저 자신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로 온전히 전해야 하며 그 내러티브(서사, 스토리텔링)를 바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멕시코 이민자의 후예지만 앞으로 당당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애니껭’ 일명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원료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애니깽이란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아침 10시,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만난 멕시코ㆍ쿠바 동포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서로의 아픈 사연을 나누며 박물관의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동포들은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으며 고국에서의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기자는 독립운동가 차이석ㆍ차보석 남매의 후손들과 함께 식사 뒤 까페에 가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번 멕시코ㆍ쿠바 동포들의 고국 나들이는 120년 만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고국을 찾을 생각입니다. ‘한국독립유산’이 주축이 되어 멕시코ㆍ쿠바 한국인 후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노정에 기꺼이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다이안 로렌드(Diann Rowland)와 ‘한국독립유산’의 공동대표인 임인자 씨는 멕시코ㆍ쿠바 동포의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코리안의 후예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일을 돕는데 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멕시코ㆍ쿠바 동포들의 고국방문을 기획한 ‘한국독립유산'의 공동대표인 임인자 씨와의 인연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기자는 2018년 8월 13일(오마이뉴스 8월 13일자 미국 LA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광복절 잔치 기사 참조) 여성독립운동가 취재차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광복절 행사가 있어 참석했고 거기서 임인자 씨를 만났다.

그때는 광복절 행사라서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연락처만 주고 받은 상태였는데 얼마전 임인자 씨로 부터 메일이 날라왔다. 한국과 멕시코 교류 120주년 되는 올해 동포들과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한국독립유산'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감동스런 글 한편을 보내왔다. 다음은 임인자 씨로 부터 받은 메일 내용이다. 조금 길지만, 동포들이 뿌리 찾기에 얼마나 큰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기에 소개한다.

"제(임인자 씨) 아들 요나단과 딸 다비다는 한국인 4세대입니다. 그들의 증조부모님, 임정구, 강영문, 권영복께서는 미국 초기 한국 이민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은 역경과 희생, 그리고 조국의 유산을 지키려는 깊은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조상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저의 자녀들은 저에게 가문의 역사를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요청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가족의 뿌리를 찾고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족 족보를 정리하는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Ancestry를 통해 저는 이민 기록, 생체 정보, 거주지 정보 등 소중한 문서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기록만으로는 조상들의 역경과 승리, 그리고 개인적인 희생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문서 속에는 숫자와 이름만 있었을 뿐,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꿈꾸었으며,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빈틈을 채우기 위해 저는 한국 역사가들이 연구한 자료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한국 이민자들의 삶과 1900년대 초 독립운동의 흔적을 담은 연구들이었지만, 대부분 한국어로 작성되어 있어 한국어를 모르는 후손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제가 아니면 이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더 깊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나단과 다비다의 큰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묻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묘지 기록에는 한국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후손들은 그 이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같은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 개척자들은 죽음 후에도 한국 이름을 지키며 정체성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지 않으려는 조용하지만 강한 선언이었습니다.

가족 중 유일한 한국 태생으로서, 저는 한국 이름과 후손들이 익숙한 영어 이름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연결고리들을 복원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제 남편 하워드 목사가 생전에 섬기던 교회의 2세대 한국인 교인들도 잊어서는 안 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매주 교회에 나와 신앙을 지키며, 우리 가족에게도 크나큰 사랑과 따뜻한 손길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삶은 조용한 희생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들의 사망 날짜조차 한국 기록에서 “미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들의 삶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존재마저 잊혀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어를 아는 제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이분들의 이야기 역시 후세에 사라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의 가족사를 정리하며, 그들이 걸어온 길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제 가족 족보에는 수천 개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혈연을 넘어, 믿음과 사랑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가족이 그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작업을 하며 저는 영화 Coco를 떠올렸습니다. 조상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기억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 손자 코아가 Remember Me에 맞춰 춤추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노래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다다”와 함께 처음으로 말했던 단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저에게 다시금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 속에 살아 숨 쉬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마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씩 발견한 이름과 날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맞춰지며 전체 그림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조나단과 다비다(임인자 씨의 아들 딸)는 늘 저를 응원하며, 제가 공유하는 이야기들을 호기심과 감사의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 그들의 관심과 사랑은 저를 더욱 동기 부여하게 했고, 이 작업이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미래 세대들에게 중요한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확신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 넣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 -기자가 임인자 씨로 부터 받은 메일-

마침, 이들의 고국 나들이 기간인 3월 26일부터 4월 6일까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관련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등에 대해 온 나라의 귀와 눈이 쏠린 기간이었기에 모처럼 <한ㆍ멕시코 120주년 기념 고국방문>을 한 동포들에게 국민적 관심을 두지 못한 듯하여 아쉬웠다. 앞으로 고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간직 한 채 이날 동포들과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 일정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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