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해축)이나 포뮬러원(F1)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스폰서’입니다. 오라클, 구글 등 빅테크 기업부터 롤렉스,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도 F1 등에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죠. 이들 외에도 2020년대 들어 광고판에 적극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이 ‘가상자산’입니다.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는 물론 빗썸 등 국내 거래소도 스포츠팀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죠.
투자자를 어떻게든 끌어들이려는 가상자산 업체 간 ‘쩐의 전쟁’이 한창인 요즘, 왜 가상자산업체가 스포츠팀의 스폰서로 떠오르게 됐는지 배경을 짚어봤습니다.

요즘 이름을 접해본 가상자산거래소라면 F1에 스폰서십으로 참여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OKX(맥라렌), Gate.i.o(레드불), 코인베이스(애스턴마틴), 크라켄(윌리엄스), 바이낸스(알핀) 등이 F1팀에 후원하고 있죠.
축구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라켄은 토트넘, AT마드리드, RB라이프치히의 유니폼 스폰서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죠.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는 ‘인터마이애미’의 지난 시즌 메인 스폰서도 가상자산 투자회사 XBTO였습니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속한 20개 팀 중 리버풀, 풀럼 등 6개 팀을 제외한 14개팀이 가상자산 관련 회사의 후원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이 K리그1 FC서울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죠.
가상자산 업체들이 스폰서로 적극적으로 나서다 보니 쓴 금액도 상당합니다. 스포츠마케팅 대행사 스포츠퀘이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자산거래소가 2024~2025 시즌 스포츠에 후원한 금액은 5억6500만달러(약 797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 시즌 대비 20% 증가한 수치입니다.
특히 스폰서로 유명한 곳이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상자산거래소 ‘크립토닷컴’입니다. 지난 시즌에만 전체 거래소 중 가장 많은 2억1300만달러(약 3004억원)를 스포츠 후원에 썼는데요, 2021년 겨울엔 르브론 제임스가 뛰고 있는 LA레이커스의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의 명명권을 따내는 데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당시 20년 계약에 총 7억달러(9860억원)을 투입해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큰 명명권 계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F1, UFC의 스폰서로도 참여하면서 계약에만 수억달러를 추가로 썼죠.

가상자산거래소가 스폰서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배경으로 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꼽힙니다.
디지털 중심의 가상자산 특성상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만큼 투자자 확보가 중요하죠. 가상자산 업계는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스포츠는 광고 효과가 큰 만큼 젊은 투자자를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스포츠를 통해 브랜드를 자주 노출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이고 친숙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기대 효과 중 하나죠.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문화와 스포츠 분야가 투자자와 접점도 많고, 스포츠에 후원할 때 지역사회와 ESG 차원에서 긍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포츠팀 입장에서도 ‘큰 손’을 스폰서로 유치할 수 있어 ‘윈윈’입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주류회사는 물론 카멜, 말보로 등 담배회사가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올렸었죠. 그러나 규제가 강화되면서 담배회사는 2010년대 들어 광고판에서 자취를 감췄고, 하이네켄 등 주류회사는 ‘무알콜 맥주’ 등을 스폰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담배회사가 사라지는 등 빈자리를 가상자산 업체가 채우고 있는 것이죠.

특히 EPL은 현재 다수의 도박업체가 유니폼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내년 시즌부턴 도박업체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이 때문에 자금력이 충분한 가상자산 업체들이 유니폼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죠.
이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가상자산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스폰서십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다만 가상자산 업체들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은 우려 요인으로 꼽힙니다. 실제로 2022년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FTX가 스폰서로 참여했던 F1팀 메르세데스 등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돈을 주지 않고 ‘잠수를 탄’ 경우도 있습니다. 가상자산 업체 ‘디지털비츠’와 유니폼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던 세리에A 축구팀 인테르 밀란은 디지털비츠가 약정한 후원액을 주지 않으면서 2022~2023시즌 도중 계약을 해지했죠.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허덕이던 인테르는 계약 해지로 3000만유로(약 495억원)가 넘는 손실을 보면서 부담이 커지게 됐습니다.
결국 가상자산과 스포츠팀의 윈윈 여부는 가상자산 업계가 얼마나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는지에 달린 셈입니다.